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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미국은 징역 22년, 한국선 무죄

입력
2015.08.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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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여교사 미성년 제자와 성관계 중형

성인ㆍ미성년 성관계 불법화한 법 따라

우리도 ‘불법성행위’ 법규 마련돼야

6일 오전 종로구 서울 교육청 앞에서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 회원들이 최근 서울의 한 공립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성폭행 가해교사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종로구 서울 교육청 앞에서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 회원들이 최근 서울의 한 공립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성폭행 가해교사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고등학교에서 다수의 남자 교사들에 의해 자행된 여학생ㆍ여교사 성폭력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선생님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렴치한 사람들로 볼 수밖에 없었다. 지속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행된 성추행 실태들이 차차 전모를 드러내면서 응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단지 이번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성범죄 교원을 아예 교단에서 영구 퇴출하는 방안까지 본격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새삼스럽게 이번에 성범죄 교원 영구 퇴출방안이 논의되는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교육 당국은 교원 성범죄가 불거질 때마다 요란한 대책과 함께 엄벌을 천명해왔지만 실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왔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최근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성범죄에 연루된 교사 231명 중 절반이 넘는 123명(53.2%)이 지금껏 학교에 남아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을 정도다.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성범죄 연루 재직 교원에 대해서는 배제 징계와 자격증 취소를, 예비 교원에 대해서는 교사 자격증 취득을 제한하는 등의 법령 정비에 나섰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역시 “성범죄 교원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조처하고, 바로 교단에서 퇴출시키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왠지 손아귀에서 모래가 줄줄 새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확인된 성범죄’에 국한된 엄벌책만으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비교육적이고 일탈적인 교단 성문제 전반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물론 성폭력이나 성희롱, 성매매 같은 명백한 성범죄는 처벌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고생 제자와 성관계를 하고도 형사적으로는 무죄 처리된 남자 교사의 사례(한국일보 7월29일자 28면)는 최소한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인의 성범죄에 관한 우리 사회의 접근법 자체가 크게 수정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국내에서 그 남자 교사의 사례가 불거질 즈음인 지난 7월 초, 미국 플로리다주 포크 카운티 법원에선 남자 고교생 제자들과 상습적으로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어온 여교사 제니퍼 피처(30)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17세인 피해 남학생들은 성관계에 동의했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부모들은 미성년 자녀의 인생이 ‘산산조각 났다(shattered)’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고, 재판부 역시 그녀를 ‘포식자(predator)’라고 몰아붙였다. 결국 여교사는 ‘17세 이하 미성년에 대한 24세 이상 성인의 성행위’를 2급 중범죄에 해당하는 ‘불법성행위(Unlawful sexual activity)’로 규정한 플로리다주법에 따라 22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야 했다.

반면 국내 남자 교사가 형사 입건조차 되지 못한 건 쌍방이 합의에 의한 관계를 주장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여학생의 나이가 15세라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한 ‘의제강간죄’(적용 연령 13세 이하)도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남자 교사는 형사적으론 무죄가 됐고, 여학생 제자와의 성관계는 교사 개인의 윤리 문제로 치환되게 됐다.

나는 흔히 말하는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윤리적인 사람이 못 된다. 오욕칠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으로서, 오히려 우리 사회의 윤리적 잣대가 좀 더 관대하고 유연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교사든 아니든, 미성년에 대한 성인의 성행위는 윤리 문제가 아니다. 그건 미성년자의 인생을 ‘산산조각 낼’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범죄다. 미국이 그런 가능성까지 감안해 엄중한 처벌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러지 못한다면, 그건 법체계의 어리석음일 뿐이다. 당장은 의제강간죄 적용 연령 상향 조정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연령차에 관한 합리적 기준을 정해 해당 성인과 미성년자 간의 부적절한 성관계 일체를 불법성행위로 규정해 엄벌하는 방안 등도 강구될 필요가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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