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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펌질’이 ‘비즈니스 모델’일 때

입력
2015.05.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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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트 일부 기사 정윤회 사진에 제공사 명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요? 빨리 수정합시다.”

작년 말 한 신문에서 ‘정윤회 문건’이 있다고 보도한 후 각 언론사에선 그동안 언론 노출을 꺼렸던 정씨의 사진을 구하느라 난리였다. 알려진 단 한 장의 사진은 지난 2013년 7월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정씨가 딸이 출전한 경기를 보고 있는 모습을 한겨레가 찍었던 사진이었다. 때문에 12월 9일 정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주요 언론사는 한겨레 측의 동의를 얻어 제공자를 밝히고 사진을 게재했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공격 당했을 때도 대부분의 매체는 현장에 있던 두서너 매체가 찍은 사진을 받아 썼다. 언론사 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 이렇게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제공 회사 명을 넣어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6ㆍ4 지방선거 당시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한쪽 팔을 번쩍 쳐든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 이 사진은 민영통신사 뉴스원이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사진을 무단 전재하거나 패러디했지만 한국일보는 뉴스원과 전재 계약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싣지 않았다. 나중에 이 사진이 사진기자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사진기자상에 선정되자, 사진기자협회로부터 제공 받아 다른 수상작과 함께 ‘사진기자협회 제공’ 크레디트로 소개했을 뿐이다.

이처럼 신문에 실리는 사진은 사전에 엄격한 저작권 검수를 거친다. 사진뿐 아니다. 전재 계약이 돼 있지 않은 통신사가 쓴 단독이나 기획기사는 인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복사’와 ‘붙여 넣기’가 너무나 손쉬운 인터넷 세상에서 이 같은 저작권 존중은 종종 무시된다. 한국은 심지어 학위논문에도 정확한 출처 표시 없이 표절하는 사례가 흔할 정도로 원본 존중 정신이 희박하다. 그러다보니 네티즌들의 우발적인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가급적 관용하는 분위기다. 일부 네티즌이 한두 개의 언론사 사진을 자주 가는 커뮤니티나 카페에 올렸다고 해서 바로 소송을 거는 언론사는 많지 않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매체가 상습적으로 타사의 저작권을 침해할 때이다.

설립된 지 겨우 1년 만에 10~20대들이 선호하는 미디어로 급부상한 한 매체가 있다. 수백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TV, 인터넷, 버스정류장 등 가리지 않고 광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1월, 이 회사가 광고주 등에게 배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소개서를 입수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난해 우리 신문 사진부에서 쓴 기획기사 ‘호모 작대기쿠스’의 제목과 사진이 이 회사의 사업소개서에 버젓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회사가 이 소개서를 만들었던 당시 우리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서 쓴 글이 그 매체의 초기화면에 올라와 있었던 모양이다.

깜짝 놀라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올렸더니 ‘페친’들이 너도나도 한국일보 기사를 도용한 사례를 고발했다. ‘역대 미스유니버스가 입었던 한국 전통의상’이라는 기사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주최하는 한국일보 사진은 물론이고 타사에서 통신사와 전재 계약을 맺고 실은 외신사진 등을 다수 올리면서 여러 언론사의 저작권을 한꺼번에 침해했다. 크레디트는 ‘이미지 참조_한국일보’ ‘이미지 참조_donga.com’ 식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이후 대응이었다. 얼마 후 우리 신문 사진을 도용한 기사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분명 내 페이스북을 보고 대응한 것일 텐데 사과 전화 한 통 없었다. 그 회사의 ‘사업소개서’에 나와 있는 ‘콘텐츠 활성주기’에 따르면 이 매체는 기사를 메인에 올린 지 이틀 안에 대부분 소비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의 저작권을 침해한 콘텐츠를 일단 올려 트래픽을 얻은 후 문제가 될 때 내려 버린다면 ‘먹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땐 잘 모르고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라 의도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에디터들에게 저작권을 사전에 확인하라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도 에디터들이 실수를 한다”고 하지만, 국내외 언론사와 수많은 커뮤티니, 블로그 등에서 비슷한 지적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에디터들이 회사의 의도를 면피용이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 회사가 진정으로 저작권 침해를 피하고 싶다면 해야 하는 일은 한 가지다. 에디터들의 글을 최종 발행하기 전에 회사가 원저작자에게 확인하는 것이다. 신문사의 데스크처럼, 모든 미디어에는 글의 발행을 사전 점검하는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다. 하지만 개인이 실수로 올린 것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상습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친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제3자의 고발이나 인지 수사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매체가 지속 가능하려면 에디터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사전에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디지털뉴스부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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