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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5.04.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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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4월 16일)의 아픔이 아물지 않은 진도 팽목항에 노란리본과 풍경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다. 진도=김주성기자 poem@hk.co.kr
세월호 참사(4월 16일)의 아픔이 아물지 않은 진도 팽목항에 노란리본과 풍경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다. 진도=김주성기자 poem@hk.co.kr

4월 들어 한국일보에 게재된 외부 칼럼을 살폈더니 ‘세월호’를 주제로 한 칼럼이 적어도 하루에 한두 건이었다. 칼럼 내용 중 ‘세월호’라는 말이 들어간 것까지 포함하면 외부 기고의 거의 절반 정도가 세월호와 연관된 것이었다.

신문에 실리는 외부 기고는 특정 주제를 청탁하지 않는다. 고정으로 글을 쓰는 필자가 쓰고 싶은 주제를 골라 자유롭게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때로 그 신문의 논조와 다른 글을 실을 경우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는 궁색한 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주제의 칼럼이 쏟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의미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구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호응하고 있으며, 그래서 ‘세월호’가 한국인의 집단기억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제프리 올릭은 ‘기억의 지도’라는 책에서 ‘집단기억’과 ‘집합기억’을 구분한다. 개인의 기억을 그러 모은 것이 ‘집합기억’이라면 ‘집단기억’은 공동체나 집단이 역사ㆍ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기억이다. ‘집단기억’이 사회를 끌고 나가며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성평등 세계 순위 최하위권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2012년 대선 결과 역시 이런 집단기억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며 정치인으로서 자질을 높이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다면 과연 정치를 시작이나 했을까, 했더라도 유력 정당의 대표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했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겠다”는 당선 일성도 그래서 나온 것일 테다.

여기서 작동하는 집단기억은 무엇일까. 박정희는 독재를 하고 인권을 짓밟았지만 경제성장을 일궜다는 평가도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중요한 집단기억은 ‘박정희는 우리를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 고프다”는 자식들에게 한 끼 더 챙겨주게 된 강렬한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지도자의 업적으로 받아들여온 게 사실이다. 그런 집단기억이 작동하면서 정권이 재창출됐고 역사에 또 새 페이지가 열린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년에 부득이 해외순방을 떠나야 하는 대통령과 달리 적어도 그날 하루만이라도 이 사건을 반성하고 기억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어떤 집단기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안전을 너무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안전에 무감한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자기반성도 있다. 가라 앉는 배에 갇힌 승객을 내버려두고 제 목숨 챙기기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다.

‘관피아’ ‘정피아’처럼 공무원과 정치인이 이권을 노리고 부정과 부실에 눈감는 사회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도 수없이 나왔다. 구조의 책임을 진 해경은 무엇을 했으며, 그때 해양수산부는 안전행정부는 또 무엇을 했느냐고 정부의 책임을 말했다. 결국 최고 책임자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을 한 거냐고 지적한다.

올릭은 ‘기억의 지도’에서 독일을 사례로 집단의 과거사 반성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지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르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개인은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행동에 말 그대로 책임을 질 수 있다.” 여기서 책임 진다는 것은 그냥 반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과를 하거나 받아내고, 소송을 통해 보상 받는 일련의 사회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정점에 말할 것도 없이 정치가 있다. 세월호 기억을 간직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 이 기억을 지우려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나아갈 때 비로소 한국 역사에는 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김범수 여론독자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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