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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증세=세금폭탄’ 프레임부터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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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증세=세금폭탄’ 프레임부터 바꿔라

입력
2015.01.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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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을 돌려 보니 무려 450만원이나 토해 내야 한다.” 연봉 1억원이 넘는 대기업 임원은 ‘세금폭탄’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왜 이 정권을 찍어줬는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고액 연봉자여서 의당 그러려니 했는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연봉 4,000만원이 조금 안 된다는 중견기업 과장도 분기탱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환급금이 지난 해보다 거의 40만원이나 적다”며 거품을 물었다. 월급쟁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지난해 세법개정 이후 처음 맞은 연말정산에서 돌려 받는 돈이 줄어든 탓이다. 정부가 보완대책을 소급 적용해 일부 되돌려 주겠다고 했는데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실 대다수 월급쟁이들의 연말정산 환급금은 전년보다 줄어들게 돼 있다. 간이세액표가 ‘덜 내고 적게 돌려주는’ 쪽으로 이미 개정된데다, 지난해 환급금 계산방식이 바뀌어서다. 계산방식을 고소득층에게 세금부담이 더 가도록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경했는데, 이건 올바른 방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일부 계층에서 세금이 더 걷힌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자에 대한 조세감면 폐지ㆍ축소 등에 따른 부작용에 대처하지 않은 점 등은 백번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3월 세금폭탄’은 대체로 고소득자에게 해당한다고 봐야 진실에 가깝다.

그런데도 거의 대다수 월급쟁이들이 이를 ‘세금폭탄’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증세 자체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완강함마저 엿보인다. 돌이켜 보면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 세력이 뿌린 원죄라는 생각이다.

세금이 부자든 서민에게든 무차별 투여되는 폭탄으로 잘못 인식된 건 노무현 정권 때부터다. 당시 보수언론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딱지 붙이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확산시킨 ‘세금폭탄’이라는 조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 정권은 종부세를 도입해 9억원 이상의 주택 보유자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겼는데, 대상자는 전체 세대주 중 1.3%에 해당하는 부자들(23만명)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가 세금폭탄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로 둔갑하면서 종부세와 아무 관련도 없는 서민도 자신의 세금이 오를 것처럼 느끼게 됐다.

당시 야당지도부 가운데 세금폭탄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언급한 사람은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이었다. 2005년 종부세를 강화하는 ‘8ㆍ31조치’가 나온 다음날 박 대표는 “정부 여당에서는 경제정책의 실패를 서민과 중산층에게 세금으로 전가하고 있다. ‘세금폭탄’을 서민들에게 퍼붓기 전에 씀씀이와 낭비부터 줄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이때부터 세금폭탄에 맞서는 감세정책을 내세웠다. 그 결과 이듬해 5ㆍ31 지방선거에서 압승했고, 2007년 대선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 ‘증세=세금폭탄’ 프레임의 위력이었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운다)’공약을 내세운 것이나, 이명박 정권의 감세정책은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공약에서나 당선 후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한 것도 마찬가지다. 비과세ㆍ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복지비용을 해결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였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지키려다 보니 세수 증대를 위해 온갖 꼼수가 동원됐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증세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 증세 실행은 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증세가 아닌 비과세 감면 축소 등 공제혜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조세저항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늘어가는 세수펑크 규모를 보나, 복지확대 추세를 볼 때 증세 논의는 피할 수는 없다. 주목할 건 이번 연말정산 개편으로 직접 손해를 보는 상위 15% 고액 연봉자들의 ‘세금폭탄’ 주장에, 자신들과는 별 관련이 없고 오히려 새 제도가 더 유리할 수 있는 서민층 월급쟁이들까지 동조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에다, 지난 10년 동안 현 집권 세력이 퍼트린 ‘세금폭탄’ 프레임의 폐해가 겹친 결과다. 이를 바로 잡지 않는 한 증세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 원죄를 뿌린 박 대통령이 먼저 나서 거둬들여야 한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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