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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범 죽인 공릉동 살인사건은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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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범 죽인 공릉동 살인사건은 정당방위”

입력
2015.12.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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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휴가 나온 만취한 군인이

집에 침입한 후 예비신부 살해하자

몸싸움 끝에 흉기 빼앗아 찔러 죽여

DNA 분석, 거짓말 탐지기 등 조사

경찰, 25년 만에 정당방위 첫 인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살려주세요.” 지난 9월 24일 오전 5시28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주택가. 새벽 어둠을 찢는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주민들이 잠에서 깨 거리로 나왔다. 6분 후 30대 남성이 황망한 표정으로 이마와 왼손에 피를 흘리며 뛰쳐나와 경찰을 찾았다. 그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한 남성이 침입해 여자 친구를 찔러 죽였다”며 “몸싸움 끝에 칼을 빼앗아 그 남성을 찔렀다”고 주장했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이 남성은 살해당한 웹디자이너 박모(33)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양모(36)씨였다. 음식 배달 일을 하는 그는 ‘공릉동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다. 집에 침입한 남성은 휴가 중이던 장모(20) 상병으로, 양씨의 칼에 찔려 숨졌다. 양씨가 살인사건 가해자인 동시에 유일한 목격자라는 점에서 ‘강도 피습 사건’이라는 양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에 경찰의 수사가 집중됐다. 설령 양씨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형법상 정당방위가 성립할지 여부도 관심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0년 이후로 25년간 살인죄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가 전무했다.

양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 상병이 자신의 집에 침입해 예비신부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장 상병은 사건 당일 문이 열려있던 박씨의 집에 들어와 주방 싱크대에 꽂혀 있던 흉기로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박씨를 찔렀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양씨가 박씨의 비명소리에 놀라 방문을 열고 나오자 장 상병이 흉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어 몸싸움을 벌이던 양씨는 장 상병의 손에 있던 흉기를 빼앗아 목과 등 부위를 찔렀고, 장 상병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 노원경찰서는 폐쇄회로(CC)TV와 혈흔 패턴, DNA 분석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양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범인에게 저항했던 박씨의 오른손 손톱에서는 장 상병의 DNA가 발견됐고, 양씨의 DNA는 발견되지 않았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양씨 진술이 거짓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장 상병이 양씨의 집에 침입하기 전 근처를 배회하며 다른 집에 들어가려 했던 사실도 확인됐다”며 “만취해 있던 장 상병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양씨에 대한 정당방위도 인정했다. 경찰은 예비 신부가 흉기에 찔린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도 흉기로 위협당한 점에 비춰 ‘정당방위의 제1 요건인 자기와 타인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양씨가 장 상병의 흉기를 빼앗았지만 장 상병이 도주하지 않고 계속 반항한 점을 근거로 ‘(양씨가) 방어하려 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설령 정당방위 범위를 초과했다고 보더라도 야간의 불미스러운 상황에서 공포, 경악 등으로 인한 행위로 볼 수 있어 과잉방위의 책임이 조각(면제)된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굉장히 드문 일로, 지난 1990년 경북 지역에서 자신을 묶고 애인을 눈앞에서 성폭행한 사람을 격투 끝에 숨지게 한 남성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노원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아온 양씨 사건을 이날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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