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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답답한 대학생들… ‘어둠의 대숲’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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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답답한 대학생들… ‘어둠의 대숲’ 속으로

입력
2016.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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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

관리자의 글 검열에 반발

올해 ‘필터링 없음’ 내걸고 탄생

정치-性-대학사회 비판 등 활발

욕설-비방-신상털기 부작용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희대 3학년 A(24)씨는 올해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페이지인‘대나무 숲(대숲)’을 통해 체육대에서 발생한 오리엔테이션(OT) 비용 과다 책정 논란을 알게 됐다. 부조리에 화가 치민 그는 또 다른 커뮤니티인 ‘어둠의 대나무 숲’에 체육대 학생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A씨가 어둠의 대숲을 선택한 이유는 과거 대숲에 제보를 했지만 여러 차례 게재되지 못한 기억 때문. A씨는 19일 “요즘 대숲에서는 내용을 미리 살펴보고 거르는 경우가 많아 아예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할 수 있는 어둠의 대숲에 글을 올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어둠’을 찾아 들어가고 있다. 대숲에서도 익명의 자유로움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필터링 기능이 없는 비공식 계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어둠의 대숲에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회 현안의 핵심을 꼬집는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문제해결 노력은 외면한 채 일방적 비난과 폭로로 제2의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대숲은 페이스북에서 운영되는 익명 커뮤니티로 2013년 서울대를 시작으로 대학마다 만들어졌다. 4년제 대학 대숲 페이지만 100개가 넘는다. 학교 측의 공식 게시판과 달리 학생들은 이곳에서 연애ㆍ취업 고민은 물론 각종 이슈들을 토론하며 의견을 나눈다. 제보 페이지에 글을 보내면 10여명 안팎의 ‘대숲지기’로 불리는 관리자들이 선택해 게시한다.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지만 대부분의 대숲은 ‘수위가 높은 욕설, 음담패설, 저격성 제보 등은 게시하지 않는다’는 자체적인 필터링 기준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관리자 측이 학교나 학생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거르거나 입맛에 맞는 글만 올린다는 불만도 꾸준히 제기됐다. 어둠의 대숲은 그 반작용으로 ‘필터링 없음’을 내걸고 올해 초부터 생겨났다. 19일 현재 대학 어둠의 대숲 계정은 19개(팔로워 100명 이상)에 이른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정치, 성(性) 등 민감한 이슈를 놓고 가감 없이 토론하는데 최근에는 강남 20대 여성 피살과 생리대 무상지원에서 촉발된 여성ㆍ남성혐오 논쟁이 주된 관심사다. 대학생 석모(23)씨는 “온라인에서도 터놓고 토론하는 공간이 적어 솔직한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어둠의 대숲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제재가 전무한 소통공간인 탓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는 노골적인 성 묘사나 개인을 특정한 욕설ㆍ비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보 검증 절차가 거의 없어 애꿎은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대학 어둠의 대숲에서 한 여성이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이 해당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글을 올려 가해자로 추정된 남학생의 신상이 낱낱이 드러나기도 했다. 제보는 결국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고 작성자는 공개 사과해야 했다. 지난해 5월 어둠의 대숲이 만들어진 건국대는 욕설과 극단적 정치성향 표출 등으로 홍역을 앓다가 한 달 만에 운영이 종료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 H대 어둠의 대숲 관리자는 “과도한 비난은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런 부분도 표현의 일부인 만큼 관리자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대숲이나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어둠의 대숲 모두 대화창구가 단절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낳은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개인보다는 전체의 의사를 중시하고 내부 고발 등 폭로를 꺼리는 조직 문화 속에서 불합리함을 호소하려면 음지로 숨어 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토론 문화가 실종되고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개인의 처지를 드러내려는 몸부림”이라며 “다만 건강한 논의를 거부하고 ‘나만 옳다’는 식의 대안 공간만 끊임없이 양산할 경우 주장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만큼 학생들도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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