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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승복 합의문’은 찢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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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승복 합의문’은 찢겨졌다

입력
2016.06.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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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영남권 시도지사협의회에 참석한 단체장들이 지난해 1월19일 대구 수성호텔에서 신공항 관련 공동성명 발표 후 서로 손을 잡고 있다. 공동성명에는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지자체간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신공항 위치와 규모 등 모든 결정권을 정부에 일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왼쪽부터 김기현 울산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대구=연합뉴스
제7회 영남권 시도지사협의회에 참석한 단체장들이 지난해 1월19일 대구 수성호텔에서 신공항 관련 공동성명 발표 후 서로 손을 잡고 있다. 공동성명에는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지자체간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신공항 위치와 규모 등 모든 결정권을 정부에 일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왼쪽부터 김기현 울산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대구=연합뉴스

영남권 지자체장 “유치경쟁 안 해”

지난해 공동성명 발표하고도

부지 선정 다가오자 반목ㆍ대립

“탈락 땐 불복” 발언에 광고전까지

표심 좇는 정치인들 뛰어들며

갈등 조정은커녕 사태 악화시켜

16일 몇몇 일간지에 “신공항은 영남은 1시간, 호남은 2시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한 곳(밀양)에 건설돼야 합니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가 게재됐다. 영남권 신공항 부지로 밀양을 내세우고 있는 대구ㆍ경북ㆍ경남ㆍ울산 등 4개 시ㆍ도지사가 내건 광고다.

이에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시는 이날 즉각 성명을 발표해 “이번 공개광고는 유치 경쟁을 하지 않겠다던 합의정신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앞선 8일 서병수 부산시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공항 용역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가덕도가 탈락할 경우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서 시장은 “밀양으로 선정될 경우 내가 시장직에서 사퇴하는 것은 물론, 국토교통부 관계자들 또한 사표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신공항 부지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장들 간 진흙탕 싸움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작년 1월 영남권 5개 시ㆍ도지사는 ‘유치 경쟁을 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 선정되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내용의 공동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부지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이 합의문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율해야 할 단체장들이 되레 이를 부추기고 지역 민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양상이다. 이 대로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탈락 지역에서 불복하며 영남권은 물론 온 나라가 두 동강이 날 것이 자명하다는 우려가 비등하다.

최근 이들 지자체장들의 행보는 작년 1월 공동합의문을 통째로 뒤엎는 양상이다. 당시 합의문은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에 관한 사항은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서 결정하도록 일임하고, ▦5개 시도는 용역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며, ▦유치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고위 인사는 “5개 지자체장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우리 정부는 믿지 못하겠으니 해외 용역기관에 일임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한 것 아니냐”며 “게다가 유치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도 그들인데 지금 와서 불복을 부추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갈등을 조장하는 건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 등은 지난 14일 가덕도 신공항 유치와 건설을 촉구하는 ‘총궐기 대회’에 참석해 “가덕도 유치”를 외쳤다. 앞서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사실상 신공항 후보지가 밀양으로 낙점돼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과 지자체장이 오히려 지역 간 대립과 반목을 유발하면서 제2 국가의 관문을 건설하는 대형 국책사업은 이제 지역 내 이권사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민심 분열 속에 신공항 건설에 따른 경제적 효과나 향후 비전 등 건설적인 논의는 자리를 잃었다. 고향이 영남권인 직장인 박모(44)씨는 “실제 지역 주민들은 큰 관심이 없는 사안인데 지자체장들과 정치인들이 부추기니 여론도 조금씩 반응을 하는 모양새”라며 “정말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인지 자신들의 치적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한다.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탈락지역이 승복하기 위해서는 용역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검증하는 단계가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무작정 서둘러 발표하기 보다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검증해보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지역 정치인의 정치적 치적, 지역 개발 욕심 등의 철저한 지역 내 이해 관계로 인해 정말 동남권에 신공항이 필요한지 등의 공항 산업 자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국민검증단 같은 제도를 신설해 각종 정책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대구=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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