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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짜리 자전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타라

입력
2015.08.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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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찬가] <1> 비싸지 않아도 재미있다

◆연재를 시작하며

“자전거 타는 사람이 줄었으면 좋겠다.”

혹시 이런 푸념 들어 보셨나요? 자전거 인구가 부쩍 늘면서 자전거 타기가 점점 힘들어지니까 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한강공원 자전거길은 주말이면 정체현상이 생길 정도니까요. 산악자전거(MTB) 쪽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MTB족이 늘다 보니 인사를 주고받던 등산객들과 다투는 일도 늘었어요. 뉴스에서도 잊을 만하면 자전거 사건사고 소식을 전합니다.

그래도 안 될 말입니다. 좀 불편해졌다고 이렇게 좋은 걸 독점할 수는 없죠. 한탄만 한다고 자전거족이 줄어들 리도 없습니다. 그보다 자전거의 진짜 재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타야 더 신나고, 더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지 알려 자전거 문화를 바꾸고 싶습니다. 추천코스부터 허술한 주차시설에 쌓인 불만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자전거에 빠진 두 기자가 매주 하나씩 전해드릴게요~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 들판 가장자리에 조심스레 섰다. 자전거는 소음과 매연 없이 자신을 멀리 데려가는 교통수단이다. 자동차나 모터바이크보다 느리지만 풍경을 감상하고 풍경에 뒤섞여 달리기는 가장 좋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 들판 가장자리에 조심스레 섰다. 자전거는 소음과 매연 없이 자신을 멀리 데려가는 교통수단이다. 자동차나 모터바이크보다 느리지만 풍경을 감상하고 풍경에 뒤섞여 달리기는 가장 좋다.

●아, 나도 폼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다

“자전거도 돈 있어야 타는 거 아닌가? 난 안 되겠구만.”

초여름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입구 정자. 한 어르신이 내 산악자전거(MTB)를 보곤 질문을 쏟아냈다. 재미있냐, 산에서 타면 안 힘드냐며 시동을 거시더니 금세 진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얼마짜리냐.” 당신도 타고 싶지만 가격이 부담돼 오래 생각만 하고 있다고. 집에 헌 자전거가 있지만 친구들 모임엔 기백만원짜리가 천지라 낄 엄두를 못 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등산로뿐 아니라 사무실, 술자리에서도 요즘 “얼마짜리 타면 되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그때마다 성의껏 답하지만 실제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보다 가격을 알아보다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요즘 유행하는 로드자전거(로드)는 웬만한 보급형도 50만~100만원이니 월급쟁이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긴 하다. 무게가 가벼워 자전거족의 사랑을 받는 카본 소재로 만들었다 치면 값은 훌쩍 뛴다. 저렴한 국산 로드도 권해 보지만, 폼 안 나고 성능도 변변찮아 보인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다. 알록달록 도장이 화려한 제품으로 자전거 생활을 시작하길 고집하는 것이다.

자전거 사기 전에 한강공원에 앉아 상상했던 모습. 현실과의 거리는 우주만큼 멀었지만. 출처: 트렉 홈페이지
자전거 사기 전에 한강공원에 앉아 상상했던 모습. 현실과의 거리는 우주만큼 멀었지만. 출처: 트렉 홈페이지

그 마음 나도 안다. 한창 자전거 아이쇼핑에 빠져 있을 때 한강공원에 앉아있으면 왠지 화려한 자전거가 더 빨라 보이고, 그런 녀석을 타야만 신날 것 같았다. 문제는 멋지게 채색된 자전거는 대개 값비싼 고급형이란 사실. 지갑은 가벼운데 고급자전거 욕심은 나날이 커져 결국 유명 브랜드 로드를 중고로 샀다. ‘몸뚱이는 알루미늄이지만 포크(앞 바퀴를 잡는 다리)는 카본이라고. ㅎㅎ’ 이런 뿌듯함도 잠시, 처음 참석한 유명 동호회 모임은 욕심에 기름을 부었다. 수십 대가 모였는데 내 자전차 값으론 바퀴 하나도 못살 정도였으니 몸가짐은 절로 다소곳해졌고, 혹여 비싼 외제차에 흠이라도 낼까 싶어 식당에 주차할 땐 혼자 멀리 댔다. 눈치 주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결국 그 해 겨울 산악자전거에 입문하며 월급을 털어 풀서스펜션 MTB를 샀다. 한달 넘게 카탈로그를 뜯어보고 자전거 제조사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블로그를 헤집고 자전거가게 사장님들을 고문한 결과, 신형 자전거 스펙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됐을 때 드디어 M브랜드 보급기종으로 결정. 집안 벽에 걸어 두고 보니 과연 늠름하다. 까만 몸체에 붉은 상표명이 죽죽. 앞뒤 바퀴에 우람한 ‘쇼바’(충격완충장치ㆍ서스펜션)가 달려 어떤 험한 길도 정복할 것만 같다. “오, 정말 비싼 값하게 생겼네.” 누나가 기념사진을 찍어 주며 던진 말에 어깨는 하늘까지 솟았다. 아, 더 이상 남들 자전거 부러워하는 일은 없을 거야.

산악자전거는 험하게 다루어지려고 태어났다. 그래도 상처가 나면 슬픈 법. 자전거 다루는 법이 서툴다면 저렴한 자전거나 중고로 입문하는 것도 좋다.
산악자전거는 험하게 다루어지려고 태어났다. 그래도 상처가 나면 슬픈 법. 자전거 다루는 법이 서툴다면 저렴한 자전거나 중고로 입문하는 것도 좋다.

●저렴한 걸로, 지금 당장 시작해요

그로부터 열 달. 나는 여전히 온라인 카탈로그를 뒤적인다. ‘미국 Y사 신품이 200만원… 가만있자, 프랑스 C사도 비슷하네… 해외구매로 가 볼까…’ 얼마를 쓰고 무엇을 새로 들여도 지름신은 좀처럼 나를 놔주지 않는다. 가끔 나가는 MTB 모임에서 내 것보다 훨씬 폭신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형님들 자전거를 보고 있으면 지름촉수가 또 움찔거린다. ‘길바닥에 나앉지 않으려면 꼭꼭 눌러야 해.’ 밤마다 이달 카드 값을 주문처럼 외워도 참기 힘든 욕심이다.

첫 자전거로 무엇을 사더라도, 이 갈증을 해소하기는 어려운 거 같다. 온라인 카페나 주변을 돌아 보면 ‘업글병’‘장비병’에 시달려 괴롭다고(또는 즐겁다고) 호소하는 사람 천지다. 부품을 바꾸고 또 바꾸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무한한 것,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자전거 라이딩의 본질인 ‘페달 밟는 즐거움’은 자전거 값이나 성능과 관계가 별로 없다. 방금 폭신한 승차감이 어쩌고저쩌고 해놓고 무슨 소리냐?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즐거운 것들을 더 즐겁게 만드는 액세서리일 뿐, 바이커스 하이(biker’s high)는 페달만 밟으면 느낄 수 있다.

지난 겨울 속초여행에서 탔던 게스트하우스 고물 자전거. 주먹을 꽉 쥐어야 겨우 브레이크가 들 정도로 낡았지만 밤새 속초 한 바퀴 도는데 제몫을 했다. 탈 수록 느끼는데, 자전거는 일단 굴러만 가면 신난다.
지난 겨울 속초여행에서 탔던 게스트하우스 고물 자전거. 주먹을 꽉 쥐어야 겨우 브레이크가 들 정도로 낡았지만 밤새 속초 한 바퀴 도는데 제몫을 했다. 탈 수록 느끼는데, 자전거는 일단 굴러만 가면 신난다.

자전거에 맛을 들인 18개월 동안 서울에서는 하이브리드와 미니벨로를, 바깥으론 로드와 MTB를 번갈아 타고 멀리는 군산까지 쏘다녔지만 페달 밟기는 언제나 똑같이 즐거웠다. 온전히 자기 힘으로 땅을 밀어내는 맛에 빠진 순간, 머릿속엔 날 듯한 마음뿐이지 자전거 가격이며 부품 등급 따위가 낄 틈이 없다. 그냥 깔고 앉은 쇳덩이일 뿐이다.

무리해서 산 MTB가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다. 신나게 산을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져 날아갈 때 퍼뜩 든 생각은 ‘아, 내 자전거!’ 자전거에 깔려서도 몸 상태보다 자전거 프레임에 상처가 났는지 살피는 꼴이라니. 결국 몸체에 커다란 흠집을 발견했을 땐 속이 시커멓게 탔다(MTB는 원래 그렇게 타는 건데). 라이딩을 즐기려고 샀는지, 상전으로 모시려고 산 건지…….

그러니 혹시나 비싼 자전거를 타야만 할 것 같아서 자전거 입문을 망설인다면, 지금 당장 싼 녀석을 골라 타는 것이 남는 장사다. 자전거는 오래 몸에 달고 있을수록 재미가 깊어진다. 적은 예산으로 비싼 자전거를 타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던 시간들, 브랜드와 차종, 부품 등급을 줄줄 외우며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보낸 주말들이 아쉽다. 그때 라이딩을 했다면 더 멀리 많은 곳에 가 보고, 기술도 늘었을 텐데. 여전히 고급자전거의 날렵한 몸매와 첨단기술을 사랑하지만 그것 없이도 자전거는 충분히 즐겁다.

방에 구겨 넣은 자전거들. 흰 미니벨로는 중학교 때부터 탔고, 노란 하이브리드는 최근에 가족 주려고 사서~ 역시 내가 탄다. 동네슈퍼나 친구 만나러 갈 때 딱이다. 지난해 여름 신나게 탔던 로드는 요즘 산악자전거에 밀려 찬밥 신세. 어떤 녀석을 타도 즐겁다.
방에 구겨 넣은 자전거들. 흰 미니벨로는 중학교 때부터 탔고, 노란 하이브리드는 최근에 가족 주려고 사서~ 역시 내가 탄다. 동네슈퍼나 친구 만나러 갈 때 딱이다. 지난해 여름 신나게 탔던 로드는 요즘 산악자전거에 밀려 찬밥 신세. 어떤 녀석을 타도 즐겁다.

★직접 타 보고 추천하는 용도별 자전거

아픈 경험은 교훈을 남겼다. 다음 자전거(?)를 살 때는 헛돈 쓰는 일이 없으리.

첫 번째는 덮어놓고 ‘좋은 자전거’를 찾지 말고 용도부터 따지라는 것. 최고급 자전거라도 도로 환경과 주행거리, 목적이 맞지 않으면 불편과 잔고장에 시달리다 자전거를 멀리하기 쉽다. 예컨대 비포장 도로나 인도를 달려야 하는 동네에서 로드는 나쁜 선택일 수 있다. 충격완충장치가 전혀 없어 손과 엉덩이가 팝콘처럼 튀고 아프다. 반대로 포장도로를 주로 이용할 사람이 MTB를 샀다가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흔하다.

두 번째는 자전거를 못 타게 될 때를 대비해 되도록 저렴한 자전거로 입문하라는 것. 업무시간 등 생활패턴이 곧잘 바뀌는 직장인은 덜컥 비싼 자전거를 샀다가 묵히는 일이 많다. 자전거가 안 맞는 체질도 있다. 어머니는 두꺼운 패드가 깔린 바지까지 샀건만 30분 이상 안장 위에서 못 버티신다. 온라인 중고장터엔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전거를 헬멧, 장갑 등 안전용품에 전조등이며 자물쇠까지 묶어 처분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오는 이유다. 저렴한 자전거는 찾는 사람이 많아 급처분이나 가격방어에도 유리하다. MTB는 고급일수록 수요가 적어 중고 가격이 절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동네 마실 등 30km 안짝

으로 살살 타려면 ‘아줌마 자전거’라 불리는 생활차나 미니벨로가 좋다. 브랜드 제품도 20만원 안쪽에서 구할 수 있고, 안장과 핸들 사이를 잇는 막대(탑튜브) 높이가 낮은 편이라 여성도 편하게 오르내린다. 미니벨로는 바퀴와 몸체가 작아서 시내 좁은 도로에서도 이동과 휴대가 쉽다. 접이식 미니벨로는 언제나 지하철 이용이 가능하고, 여차하면 택시에 넣을 수도 있다. 다만 최저 기어비(높을 수록 페달 밟는 힘이 많이 든다)가 높아서 오르막을 오를 땐 각오해야 한다.

60km 이내 중거리 여행

에는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적당하다. MTB와 로드 특징을 섞은 자전거로 쉽게 말해 내구성과 속도가 중간이다. 국내 업체들이 대량 생산하고 있어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 속도는 시내에선 로드에도 뒤지지 않는다. 기어비도 미니벨로보다 폭이 넓어 도심의 웬만한 언덕은 쉽게 오른다.

고속 쾌감을 느끼거나 장거리

를 달리고 싶다면 역시 로드가 답이다. 선택 가능한 기어비가 많아서 저속 오르막 등반부터 내리막 고속주행까지 문제 없다. 성인 남성이라면 평지 순간 속도도 30km 정도는 쉽게 낸다. 양 머리를 닮은 핸들(드롭바)은 잡을 곳이 많아서 탑승 자세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고, 장거리 주행 때 손, 허리의 피로를 덜어준다. 동호인 모임은 물론 한강과 지류의 자전거도로를 이용한 자전거 출근용으로 널리 쓸 수 있다.

비포장 도로나 임도를 탐험

한다면 선택 가능한 녀석은 MTB뿐이다. ‘쇼바’가 앞 바퀴에만 달린 하드테일, 앞뒤에 모두 달린 풀서스펜션으로 종류가 나뉘는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하드테일은 100만원 안쪽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풀서스펜션은 200만원 이하로 파는 자전거가 드물다. 풀서스펜션으론 격한 라이딩이 가능하지만 하드테일로도 우면산, 대모산, 아차산 등 웬만한 도심 산은 즐길 수 있다.

김민호기자 kimon8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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