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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결혼 1년차 부부의 애틋한 이별…“쌈밥 혼자 먹어 미안하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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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결혼 1년차 부부의 애틋한 이별…“쌈밥 혼자 먹어 미안하다더니”

입력
2020.05.0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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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합동감식반이 현장 조사를 위해 사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천=이한호 기자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합동감식반이 현장 조사를 위해 사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천=이한호 기자

“점심에 비싼 쌈밥 먹었다며 ‘나 혼자만 먹어 미안하다’고 했는데...”

3일 오후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 현장 앞에서 만난 A(55)씨는 검게 그을린 채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건물을 보면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남편(49)과 사고 당일인 지난달 29일 낮 12시 38분 통화가 마지막일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A씨 남편은 당일 물류센터 내에서 배기관 설치 작업 중 화마를 피하지 못해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그날 점심식사 후 남편과 통화에서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비싼 음식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 여긴 다르다’고 말해 괜찮은 곳에서 일하게 됐구나 생각했다”며 “남편이 ‘나 혼자만 먹어 미안해, 내일부터 연휴니까 일찍 퇴근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혼자 떠나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건물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A씨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보인 이유는 늦깎이 결혼 1년차 부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늦깎이 결혼 소식에 시댁 식구들도 무척이나 좋아했고 잘해주셨다”며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결혼 후 남편은 ‘자기가 돈 다 벌어 올 테니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 등 무척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떨어져 있기 싫어 1시간30분 거리를 출퇴근하기로 약속했는데”라며 “그 동안 남편이 일하는 곳을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렵고 힘든 곳에서 일하는 줄 정말 몰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잔여 유해 수색을 위해 중장비를 동원, 건물 안에 남은 잔해물을 제거하고 있다. 이천=이승엽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잔여 유해 수색을 위해 중장비를 동원, 건물 안에 남은 잔해물을 제거하고 있다. 이천=이승엽 기자

눈시울을 적시던 A씨는 “회사 측이 안전교육만 제대로 실시했어도 남편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편이 일을 하러 갈 때면 ‘아침 1시간, 점심식사 후 1시간씩 매일 안전교육을 실시한다’는 말을 했는데 사고 당일에는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교육을 받았으면 오후 2시 이후에 투입돼야 맞는데 사고 발생 시간에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당일 소방서에 접수된 화재신고 시간은 오후 1시 32분이다.

A씨는 다만 이번 현장에서도 교육을 실제 하는지 여부에 대해 회사나 경찰 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고 했다.

A씨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대부분의 유족들처럼 장례를 미룬 상태다.

A씨는 “하청의 하청을 받은 남편과 같은 회사 직원 2명 등 3명이 모두 사고로 숨졌는데 (하청의 하청을 하면 안 되는 등의)원칙만 지켜졌더라면 우리 남편은 이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한편 경찰은 이날 오후 이틀간의 정밀수색을 통해 일부 희생자의 유실된 신체를 모두 수거하는 등 38명에 대한 신원 확인을 마쳤다. 이에 경찰은 오는 6일 3차 감식을 통해 화재원인 규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유섭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정밀수색을 마친 만큼 3차 감식을 통해 화재 원인 등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과수는 4차 감식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혀 화재원인 조사가 장기화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0일 실시한 1차 감식에서는 현장의 장애물이 많아 육안으로 보이는 잔해물에 집중했으며, 이달 1일 2차 감식은 감정이 필요한 물건을 수거해 국과수에 정밀감정을 의뢰한 바 있다.

이천=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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