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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외면해온 한국 사회, n번방은 모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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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외면해온 한국 사회, n번방은 모두의 책임”

입력
2020.04.13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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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경기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수정 경기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잔혹한 디지털 성범죄 중 ‘하나’였던 n번방이 세상에 알려진 뒤 세상이 시끄럽다.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가해자 몇 명 잡아 넣는다고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해결될 까.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성을 사고 파는 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바로 잡지 않고, 그에 걸맞게 법과 제도를 제대로 뜯어 고치지 않는 한, n번방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11일 전화로 연결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강조점이다.

이 교수는 최근 디지털성범죄와 가정폭력, 스토킹 등을 다룬 범죄영화를 피해자 관점에서 분석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민음사)’이란 책을 냈다. 지난해 4월부터 이다혜 작가와 함께 진행한 방송을 정리한 것이다.

성 매매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처벌 수위도 높지 않은 한국에서 디지털성범죄가 만연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방치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n번방 가담자는 물론 아동 성착취물 사용자에 대한 신상공개 조치가 불가피하단 입장이다. 그래야 “이거 봤다가 진짜 큰일 나겠구나”라는 경각심을 지속시켜 성 범죄에 대한 강력한 사회 규범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처벌만큼 중요한 건 예방이다. 이 교수는 일단 성 범죄에 가장 취약한 아이들부터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제강간연령을 최소 16세로 높이는 게 급선무다. 지금은 13살만 넘으면 미성년자가 어른 꾀임에 속아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자가 아닌 성매매 청소년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가출이나 학대 등으로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 스타벅스 쿠폰 한 장 받으려 성범죄 희생양이 되는 현실을 사회가 방조한 셈이다. 이 밖에도 성매매를 위해 아이를 유인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아동유인방지법 제정, 디지털 공간에서 사실상 포주 역할을 하는 랜덤채팅앱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 강화도 이뤄져야 한다.

사실 이런 대책은 새로운 게 아니다. 오래된 주장이지만 정치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성을 대등하게 보지 않는 사회다 보니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남성 정치인들의 그릇된 여성관, 성 인식 또한 고스란히 드러나요. 룸살롱을 다니는 게 익숙한 사람들 입장에선 버닝썬도, 텔레그램도 그냥 불편한 이슈지요.”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지음 

 민음사 발행ㆍ412쪽ㆍ1만8,000원 

그래서 디지털 성범죄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저 호기심에 재미로 보는 거 아니냐’ ‘가출한 비행 청소년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나 당하는 일 아니냐’고 해왔던 그 무심함이 처참한 사태를 가져왔다는 것. “저를 포함해 모두가 각성하고 더 이상은 모른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n번방 사건 전후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은 정말 없어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한 행동과 연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란 얘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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