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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띄운 편지 <끝>] 생활치료센터에 갇힌 듯 지내도 ‘힘내라’ 응원의 목소리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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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띄운 편지 <끝>] 생활치료센터에 갇힌 듯 지내도 ‘힘내라’ 응원의 목소리 들립니다

입력
2020.03.13 01: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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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청 공무원들이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환자들이 사용할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대구시청 공무원들이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환자들이 사용할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2월29일 토요일 오후 5시20분, 사무실 전화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생활치료센터를 준비해야 하니 회의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문을 열자 행정안전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시가 떨어졌다. ‘경증 환자 160명 입소, 2일 오전 9시까지 완료할 것.’ 생활치료센터는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은 복잡해지는데 어느새 몸은 동구 신서동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 와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며 필요한 물품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동행한 행안부 직원의 도움이 컸다. 그는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로 데려온 교민 숙소를 준비한 경험이 있어 처음 온 중앙교육연수원에서도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저녁을 먹을 새도 없이 집에 들러 짐만 챙겨 나왔다. 다시 연수원에 도착해 각 방에 들어갈 물품과 센터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채워 나갔다. 월요일 아침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하는데 토요일 밤인데다 다음날은 휴일이라 직원 모두 마음이 급했다. 대구시청에 있는 탁자와 컴퓨터 등 우선 가능한 것부터 가져왔다. 일요일인 다음날도 정신 없이 바빠 종일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2일 오전 11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경증 환자들이 쏟아져왔다. 대기하던 의료진과 직원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119구급차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확진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다들 고개를 떨구고 방으로 들어갔다. 몸이 아픈 환자들인데도 마치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입소자 중에는 엄마와 아이, 아빠까지 모두 감염된 가족도 있었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짐을 하나도 챙기지 않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어느 환자는 “낡은 옷이라도 좋으니 구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신희 대구시 조직관리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환자들이 사용할 물품과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시 제공
이신희 대구시 조직관리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환자들이 사용할 물품과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시 제공

생활치료센터가 본격 운영되고 며칠 지나서였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이 센터로 간 것 같은데 계속 통화가 안 된다”는 한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명단을 뒤져 아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휴대폰을 연결하니 바로 받았다. 어머니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은 것이었다. 불편한 게 없는지, 혹시 컵라면이나 다른 게 먹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말한 뒤 끊었다. 이번엔 어머니에게 전화해 “아들이 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전했다. 휴대폰 너머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픈 애한테 야단을 쳤어예… 지도 많이 속상하고 힘들 텐데 혼만 냈어예.” 어머니는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생활치료센터는 대구지역에 신종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면서 병실이 부족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무증상에 가까운 경증 환자들이 입소한다고 해도 우한 교민들이 머물렀던 격리 숙소보다 감염 위험성이 크다. 그런데도 의료진들은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다. 환자들 스스로 하루 두 번 체온을 측정해 기록하면 살펴보는 것으로 돼 있지만, 조금만 이상하면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진찰한다. 환자는 순식간에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얼마 전 입소자 한 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해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다. 24시간 환자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예민해지고 많이 피곤할 텐데도 의료진 누구도 인상 쓰지 않고 늘 환한 표정으로 일한다.

2일 첫 입소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는데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얼마전엔 환자들의 검체물을 담는 아이스박스가 부족해 난리가 났다. 환자들은 음성 판정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텐데 행여 잘못되면 큰일이다. 음식물을 쌌던 용기까지 안전하게 담을 수 있는 아이스박스라면 무엇이든 모았다. 119구급차로 속히 실어 보냈지만, 경북대병원에서 잘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직원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각 방의 열쇠가 카드를 꽂는 방식으로 돼있다 보니 입소자들 중 키를 꽂아 둔 채 나오는 일이 종종 있다. 주로 연세 많은 분들이 깜박한다. 당황한 표정으로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직원들은 연락을 받아도 곧바로 갈 수 없다. 방호복을 착용해도 복도에 의료진이 있거나 폐기물 수거 등 다른 업무를 보는 직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 키를 가져다 주면 환자는 환자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미안해한다.

이신희(오른쪽) 대구시 조직관리팀장이 직원들과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일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이신희(오른쪽) 대구시 조직관리팀장이 직원들과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일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지난 8일 처음으로 24명이 퇴소했다. 이들은 2번의 검체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센터를 나서는 퇴소자마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었다. 추가 확진자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곳 중앙교육연수원을 시작으로 생활치료센터로 공간을 내주겠다는 기업과 기관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열흘 넘게 센터에 갇혀 있다시피 지내지만 ‘힘내라’ 응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를 잘 듣고 있다. 온 국민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 환자든 아니든 국민들이 평온했던 일상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도록 우리 모두 따뜻한 마음만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이신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 현장총괄ㆍ대구시 조직관리팀장

이신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 현장총괄ㆍ대구시 조직관리팀장
이신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 현장총괄ㆍ대구시 조직관리팀장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1월 대구시청 공무원 임용

대구시 시정혁신TF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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