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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5부제 첫날 판매 체험기] “죄송합니다”만 수백 번… ‘마스크 없무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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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5부제 첫날 판매 체험기] “죄송합니다”만 수백 번… ‘마스크 없무새’가 됐다

입력
2020.03.10 14:18
수정
2020.03.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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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첫날인 9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약국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이한호 기자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첫날인 9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약국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이한호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스크. 현장에선 마스크 판매가 어떻게 이뤄질까. 과연 문제점은 뭘까. ‘마스크 5부제’는 잘 시행될까. 이 모든 게 궁금하던 찰나, 마침 약국을 운영하는 지인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왔다. 처음 시행되는 마스크 5부제로 인해 일손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약국을 찾았다. 이날만큼은 기자가 아닌 약국 일일 아르바이트생으로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약국이 문을 연 오전 8시 30분. 길게 대기 줄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약국 앞은 한산했다. 5부제를 시행하기 전까진 이 약국에도 줄이 꽤 길었다고 한다. 5부제가 시행되면서 어느 정도 분산이 된 듯했다. 그러나 대기 줄만 없었을 뿐 마스크 판매는 그 전이나 지금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스크가 들어왔는지를 물어오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9시가 좀 넘자 전화벨도 불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스크 언제 올지 몰라요” 반복만 수십 번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배송 중이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윤한슬 기자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배송 중이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윤한슬 기자

오전에만 해도 입고 시간을 모른다는 이유로 수십 번씩 죄인이 됐다. 입고 시간을 모른다고 써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스크 언제 들어와요?”(손님)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오전 중에 들어올 것 같긴 한데, 정확한 시간은 저희도 모릅니다.”(기자)

“그걸 여기서 모르면 어떡해? 그냥 모른다고 하는 거 아니야?”(손님)

“아니에요. 도매 쪽에 물어봤는데, 거기에서도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니 저희로선 알 길이 없네요. 죄송합니다.”(기자)

진짜 몰랐다. 바로 5분 후에 올지, 30분 후에 올지, 1시간 후에 올지 몰랐다. 그렇다고 바쁜 도매상에게 5분에 한 번씩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마음 졸여가며 마스크가 오기를 오매불망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 드디어 ‘그 분’이 오셨다. 도매상이 마스크 박스를 들고 약국에 입장하셨다. 약사, 아르바이트생은 물론 마스크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몇몇 손님들까지도 모두의 눈길은 도매상이 들고 있는 박스로 쏠렸다. 그리고 이내 “마스크 왔나 보다”라며 술렁이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판매 준비를 위해 박스를 조제대 뒤편으로 가져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조심스레 열어봤다. 이럴 수가. 5매입 마스크였다. 1인당 구매 수량이 2개로 제한돼 있으니 일일이 포장을 뜯어 2개씩 다시 포장해야 했다. 조제대를 깨끗이 소독하고 새 라텍스 장갑을 낀 채 작업을 시작했다. 손님들은 기다리고, 손은 모자라고. 급한 대로 5개만 우선 작업하고 손님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뒤 마스크를 팔았다.

등본 아닌 가족관계증명서 들고 왔다 발길 돌리기도

9일 입고된 공적 마스크는 5매입 마스크여서 일일이 마스크를 2개씩 다시 포장해야 했다. 윤한슬 기자
9일 입고된 공적 마스크는 5매입 마스크여서 일일이 마스크를 2개씩 다시 포장해야 했다. 윤한슬 기자

아니나다를까 월요일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대리 구매지만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오늘 하루만 해주면 안돼요? 이제 올 시간이 없는데.” “제가 엄만데 그냥 해주세요. 언제 또 등본을 떼요.”

혼자 사는 노모 대신 마스크를 사러 온 딸도 있었다. 그러나 등본에 함께 기재돼 있지 않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발길을 돌렸다. 등본 대신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온 손님들도 많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대리 수령이 가능한 사람은 함께 사는 동거인에 한정돼 동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등본만 허용하고 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고 온 손님들은 가족이 맞지만 등본이 없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야 했다.

마음 같아선 해주고 싶지만, 지침이 그러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공적 마스크니까 함부로 재량을 발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또 한번 죄인이 됐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정한 게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기자는 지침대로 했을 뿐인데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송하고 또 죄송해야만 했다.

미안함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마스크를 구매하겠다고 다짜고짜 돈을 내미는 손님, 처방전을 내미는 손님, 약값을 계산해달라는 손님 등 사방에서 손이 계산대로 몰려왔다. 약국은 기존 업무와 마스크 공적 판매라는 새 업무가 뒤섞이면서 혼란 그 자체였다. 어느덧 한 손엔 처방전이, 한 손엔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재빨리 처방전 바코드를 찍어 약사에게 건네고, 손에 든 신분증을 보며 주민등록번호를 전산에 입력했다.

대리구매 된다는데요… 장기요양인증서라는 복병 앞에 속수무책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서 마스크 판매 일일 체험 중인 기자가 잠시 손님이 끊긴 시간에 마스크를 들여다보고 있다. 윤한슬 기자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서 마스크 판매 일일 체험 중인 기자가 잠시 손님이 끊긴 시간에 마스크를 들여다보고 있다. 윤한슬 기자

정신 없던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 조제대 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손님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수시로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함께 밥을 먹던 약사는 한입 먹고 앞으로 뛰어나가고, 또 먹으려다 말고 손님을 응대하러 나갔다. 일손을 거들어야겠다 싶어 점심을 흡입한 채 다시 계산대에 앉았다.

그나마 느긋할 줄 알았지만, 인근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틈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다. 정신 없이 마스크를 팔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다.

약국이 이렇게 핫 플레이스가 된 적이 있었나. BTS 콘서트장도 아닌데 시민들이 약국 앞에 긴 줄을 서고 약사나 약국 직원들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에 이렇게 관심을 보낸 적이 있었나. 약사는 “약국 문 열고 처음 겪는 일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며 “줄을 서도 못 사고, 특정 요일에만 사야 하는 상황을 보면 약사 입장에서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정신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마스크를 사러 온 한 손님이 장기요양인증서를 내밀었다. “이건 뭐였더라….”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뒤에서 약을 조제 중이던 약사에게 급히 SOS를 쳤다. 알고 보니 장기요양급여 수급자도 대리 구매가 가능했다.

“대리 구매할 건데 아기 날짜에 맞춰오면 되나요?” “저는 00년생이고, 아이는 00년생인데 대리 구매하려면 언제 와야 되나요?” 정부 지침이 수시로 바뀌는 탓에 손님도, 일일 직원인 기자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였다.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판매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한슬 기자
9일 서울 중랑구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판매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한슬 기자

성인용 마스크가 품절되면서 전쟁 같던 마스크 판매는 오후 4시 무렵 끝났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마스크를 사러 온 사람들은 많았다. 전화 문의도 계속됐다. “마스크 없습니다.” “마스크 다 나갔어요.” “오늘 마스크 판매 끝났습니다.” 약사들 사이에서 ‘마스크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마스크 없무새’라는 표현이 생겼다는데, 정말 실감이 났다. 그러나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는 “뒤에 숨겨둔 거 다 안다. 빨리 달라. 안 그러면 뒤져보겠다”고 협박한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5부제를 시행해도 마스크를 사지 못한 시민들, 약국 수십 군데를 돌아다니며 마스크를 찾아나서는 시민들, 이 모든 혼란과 수모를 감당해야 하는 약사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모두 코로나19의 짐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은 똑같으니 조금씩 참으면 더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날 마스크 입고 시간을 묻는 전화였다. 저희도 모르니 다음날 전화 달라고 말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노고가 많으십니다. 안 그래도 바쁘신데 또 전화 드리면 방해될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고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하루였지만, 그 하루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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