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말 들을 때마다 미치듯 공부하고 싶었다”

알림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말 들을 때마다 미치듯 공부하고 싶었다”

입력
2020.02.09 09:00
수정
2020.02.09 12:20
0 0

[인턴이 가봤다]배움에 한 맺힌 4080여고생들의 ‘내 생각 말하기 대회’

지난달 31일 열린 일성여중고 말하기대회에서 재학생 이입분(66)씨가 발표하고 있다. 정해주 인턴기자
지난달 31일 열린 일성여중고 말하기대회에서 재학생 이입분(66)씨가 발표하고 있다. 정해주 인턴기자

“말 실수해서 못 배운 거 들통날까 봐 사람 사귈 자신도 없었어요. 근데 여기 와보니깐 다 비슷하더라고요. 그냥 내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였어요.”

단상 위에 오른 이입분(66)씨가 말을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지난달 31일 마포구에서 열린 제4회 일성여자중고등학교의 말하기 대회 현장. 학교 강당을 학생 150 여명이 가득 채웠다. 이곳의 학생들은 40~80대의 여성들.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을 포기했던 이들이 늦은 나이에 다시 찾아온 학교였다. 일성여중고는 1952년 야학에서 시작해 지난 2000년 학력 인정 평생학교로 지정됐다. 중학교 2년(6학기제), 고등학교 2년(6학기제) 총 4년의 시간을 거치면 중고등 학력이 인정된다.

이날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15명의 학생은 며칠 동안 공을 들여 쓴 원고를 발표했다. 학생들의 발표에는 그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관객들은 참가 학생의 녹록지 않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쯧쯧’하며 혀를 차기도, 아픈 기억에 눈물짓기도 했다. 발표하던 학생이 조금이라도 멈칫거리면 단상 밑에서는 응원의 박수가 이어졌다.

대회 중간중간 이어지는 동아리의 공연은 관객의 흥을 더했다.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팝송과 국악 동아리가 공연을 펼치자 강당의 학생들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강제로 참여하는 다른 중고등학교 행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참여 학생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였지만 관객으로 온 재학생과 참가자 모두 다 안다는 듯 웃고 울며 소통하고 있었다.

여자는 이름 석 자만 알면 된다는 말에 중학교도 못 다녀

이명길(70)씨가 “여자가 이름 석 자만 알면 된다고 부모님이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하자 단상 밑에서는 “그땐 다 그랬지”라는 말이 나왔다. 학생들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덤덤하게 공감을 표했다. 이씨는 “밑으로 남동생이 둘 있는데 나만 중학교도 못 나왔다”며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여성복 매장의 직원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매장의 직원에서 시작해 평화시장의 노점을 거쳐 여성복 매장까지 직접 운영했다. 부족한 것 없어 보였던 이씨지만 학교가 한으로 남아 세 자녀도 모두 대학에 진학시키고 자신 또한 일성여중고에 입학했다.

말하기 대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한 이입분씨. 이미령 인턴기자
말하기 대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한 이입분씨. 이미령 인턴기자

참가자의 이야기는 장소와 시간만 다를 뿐 일성여중고에 다니는 학생 모두가 겪은 일이었다.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여자라서, 가난해서 중고등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입분씨 역시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심지어 맏딸이었기에 생계를 도와야 했다. 선생님의 권유에 중학교 입시에도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중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대신 학교 매점에서 일을 해야 했다.

어린 시절 배웠던 영어 문장을 아직도 줄줄 외우는 이무선(72)씨는 야간학교를 2년을 다니다 학교를 그만뒀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는 딸이 걱정된 어머니가 교과서를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야 어머니는 교과서를 구해줬다. 그는 “낮으로 밭을 매고, 소를 끌고 다니면서 한문을 외웠다”며 공부를 포기하지 못했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사는 내내 배움이 짧은 것 탄로 날까 두렵고 주눅들어

이무선(72)씨가 학교에서 얻은 새로운 삶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해주 인턴기자
이무선(72)씨가 학교에서 얻은 새로운 삶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해주 인턴기자

그땐 다 그랬다는 말은 학생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으면 무시의 시선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가장으로 집안의 생계를 이어오며 산전수전 겪고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아왔던 이들도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말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30년 동안 혼자 두 자녀를 키워 온 이씨도 이런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는 “교회에서도 여러 자리 해보라고 했지만 배움이 짧은 것이 탄로 날까 봐 다 거절했다”며 “지금은 학교도 다 졸업하니 당당하다”고 말했다.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듣는 이씨 또한 그 벽을 넘는 것은 어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던 그는 사람을 사귈 때도 말 실수할까 싶어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러던 그는 학교를 다니고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이씨는 “비슷비슷한 사정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아픔을 보듬은 게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학교에서 배우며 내가 바뀌니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더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단상 위에 올라 자신이 겪었던 설움을 다 꺼내놓은 이들의 표정에는 이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집 떠나 고시원에 살고, 암 투병 중에도 꺾이지 않는 공부 열정

학생들이 등교 시간 9시보다 너무 일찍 학교를 오자 학교 측에서 7시30분 이후에 와 달라며 붙여놓은 안내문. 정해주 인턴기자
학생들이 등교 시간 9시보다 너무 일찍 학교를 오자 학교 측에서 7시30분 이후에 와 달라며 붙여놓은 안내문. 정해주 인턴기자

흔히 평생학교라고 하면 취미나 소일거리로 다닐 것 같지만 일성여중고 늦깎이 학생들은 보통의 고등학생과 비교해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만큼 공부에 열정을 쏟고 있다. 오히려 기자가 수험생이었던 8년 전 고 3교실에 앉아있던 학생들보다도 공부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말하기 대회가 열리는 날에도 한 학생이 아침 일찍부터 학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이 모습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남다른 학구열 덕분에 건물 문에는 특별한 안내문까지 붙어있을 정도다. ‘7시 30분 이후에 등교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은 것은 등교 시간인 9시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다. 걸핏하면 지각을 하고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던 기자의 고 3시절이 떠올라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목고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들 듯, 일성여고 전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온다. 수도권과 지방은 물론 제주에서 따로 방을 구해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남다른 학구열을 자랑하는 이입분씨도 경북 영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둔 그는 무기력하게 집에서 TV를 보다 이 학교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씨는 주저 없이 바로 학교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경기 양주에 있는 친정집에서 통학했다. 하지만 이씨는 한 달 만에 학교 근처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공부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다. 주말마다 영주에 내려가는 이씨는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2시간 반 동안 책을 읽는다. 짧은 시간도 쪼개 공부하는 이씨는 영락없는 10대의 고3 수험생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니 멀미도 사라졌다”며 “한문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쾌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5년 만에 일성여중고를 졸업하는 이명길(70)씨. 이미령 인턴기자
5년 만에 일성여중고를 졸업하는 이명길(70)씨. 이미령 인턴기자

중·고등 과정 4년을 모두 거친 이명길씨의 학교생활도 만만치는 않았다. 일을 그만두자 급작스레 희소 암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끝마친 이씨에게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느라 학교를 일 년간 쉬어야 했다. 그는 “동기들은 다 여고생이 됐는데 나만 되지 못해서 속상했다”며 “1년 쉬고 학교에 돌아온 다음에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이 되는 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에게 여고생이란 단어는 늘 특별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예비소집을 가려 병원을 나오다 넘어져 이가 부러지고, 얼굴을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스크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입학식에 참석했다. 항암 치료를 하며 학교에 다닌 그는 자신의 삶을 시로 적어 등단한 시인이 됐다. 동기들보다 1년 늦을 수밖에 없던 이씨는 이달 말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자식또래 손주또래 학생들 속에서 인생 2막에 도전한다

일성여고 대학 진학 현황. 13년 연속 졸업생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일성여고 대학 진학 현황. 13년 연속 졸업생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학교에 다니며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이들은 말하기 대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새롭게 갖게 된 꿈을 이야기했다. 중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목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생 2막을 계획한 것이다. 꿈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얼굴은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답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젊은 학생들과 대학을 다녀야 하는 게 걱정이라고 말하면서도 학생들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놀아야 한다는 말이 무성하지만 대학 수업을 수월하게 따라가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한 학생도 있었다. 명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한 이무선씨는 2월 1일부터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생업과 공부를 함께 하느라 겨우 4시간 잠든다는 이씨지만 대학 생활을 위해 쉬기보다 컴퓨터 공부를 선택했다.

고시생만큼 열심히 공부한 이입분씨도 올해 대학생이 된다. 이씨는 노인 복지사라는 꿈을 가지고 백석예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다.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주말을 이용해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녔다. 22일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앞둔 그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씨에게는 새내기라면 다 가질 법한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도 엿보였다. 그는 “시 낭송 동아리나 아코디언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며 “고등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선재 일성여중고 교장. 이미령 인턴기자
이선재 일성여중고 교장. 이미령 인턴기자

학생들이 새 인생을 겁내지 않는 이유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도전정신 덕분이다. 이선재 일성여중고 교장은 학생들에게 즐겁게, 재밌게, 행복하게 도전하라는 말을 강조한다. 도전의 경험들이 모두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대회도 학생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했다. 이 교장은 “여기 학생들은 망신당하고 무시당할까 봐 말을 못 하던 사람들”이라며 “말하기 대회를 통해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기회를 만들어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를 본받아 학생들은 “나도 도전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대회에서 입을 모아 외치기도 했다. 그는 “좋은 교육은 결국 좋은 경험”이라며 “자신이 중심이 되는 기회를 주며 모든 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해주 인턴기자

이미령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