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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서랍장 깔려 숨진 아동 유족에게 500억원 배상…한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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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서랍장 깔려 숨진 아동 유족에게 500억원 배상…한국이라면?

입력
2020.01.12 09:30
수정
2020.01.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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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아야 수 억 원…심지어 피해자가 직접 제조회사 잘못 밝혀내야 

이케아가 2017년 서랍장에 깔려 숨진 아동의 유족에게 536억원을 배상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인사이드 에디션 캡처
이케아가 2017년 서랍장에 깔려 숨진 아동의 유족에게 536억원을 배상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인사이드 에디션 캡처

2016년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됐던 ‘이케아 서랍장 사고’ 기억하시나요?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의 ‘말름(Malm)’ 서랍장이 앞으로 넘어져 어린이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났죠. 최근 이케아가 2017년 미국에서 말름 서랍장에 깔려 숨진 아동의 유족에게 4,600만달러(약 536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특히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물론 사고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처리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는 이들도 많은데요.

사건은 2017년 5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뷰에나 파크의 한 가정집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두 살이었던 조제프 두덱은 이케아의 31㎏짜리 말름 서랍장이 넘어지는 바람에 그 아래 깔려 질식사했습니다. 조제프의 가족들은 이케아 측이 서랍장이 넘어질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소비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며 소송에 나섰고요.

문제의 서랍장은 아이가 붙잡거나 매달릴 경우 앞으로 쉽게 넘어지는 결함이 있어 2016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리콜이 진행됐습니다. 그 해 이케아는 펜실베이니아주, 워싱턴주, 미네소타주에서 세 명의 아이들이 숨져 유족에게 총 5,000만달러(약 583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었죠.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요? 수백억원대 보상이 가능했을까요?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생각입니다. 애초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입증 책임 등에 있어서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6~2017년 전세계에서 이케아 말름 서랍장이 넘어지면서 아동들이 깔리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2016~2017년 전세계에서 이케아 말름 서랍장이 넘어지면서 아동들이 깔리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우선 미국은 매우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운영하는 나라로 꼽혀요. 이 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일 경우 실제 손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제도인데요. 판매자가 위험한 제품인지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소비자에게 제품을 팔아서 중대한 피해를 입혔을 경우, 거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케아 사례만 보더라도 2016년에 발생한 사고에서는 세 명의 숨진 아동 유족들에게 총 500여억원을 줬지만, 이 사고 이후 재차 발생한 2017년 사고에서는 단 한 명의 유족에게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지급하기로 했죠.

김기태 미국 변호사는 “이케아는 앞서 발생한 사망사고로 제품의 하자를 알고 있거나 알 수 있었던 상황이라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됐다”며 “나쁜 마음을 가진 기업에게 큰 금액을 지급하도록 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벌을 주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특허 등 일부 분야를 빼고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죠. 설사 적용한다고 해도 배상액에 상한선이 있습니다. 한 예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환경성 질환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긴 했지만, 피해액의 3배 이내에서 손해배상을 받도록 정했죠. 반면 미국에서는 주 마다 적용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상한선이 없는 주가 여럿 있습니다. 이케아 서랍장 사고 같은 경우 수백억원대 배상이 이뤄지는 것이 대단히 이례적인 게 아닌 것이죠.

미국에서는 제조물 책임법도 폭넓게 인정되고 있어요.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요, 미국은 사실상 제조물 책임법의 ‘종주국’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특히 기계 결함 등 소비자가 입증하기 어려운 사안의 경우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나 판매사가 제품의 안정성과 결함 여부를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2000년 제조물 책임법을 만들면서 이런 제도를 담지 못한 탓에 기본적으로 피해 입은 사람이 직접 제조물의 결함과 피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가령 내가 타던 자동차가 주행 중에 갑자기 불이 났다면, 차량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식입니다.

때문에 법조인들은 만약 ‘이케아 서랍장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배상금이 많아야 수억원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전면 도입되지 않은데다 결함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성승환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실제로 손해 입은 금액을 위주로 배상하다 보니 아무리 인명사고여도 배상 금액이 3억원을 넘지 못할 것 같다”면서도 “게다가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제조업자가 100% 잘못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액이 낮아지거나 심지어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패소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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