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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전 현장 누비던 터키 특파원, 한국서 개콘 멤버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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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전 현장 누비던 터키 특파원, 한국서 개콘 멤버 된 사연

입력
2019.12.21 14:00
수정
2019.12.21 14:2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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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사 한국특파원 근무했지만 

 정치적 이유 직장 폐쇄돼 졸지에 백수 

 장기인 스탠드업 코미디로 맹활약 

KBS 개그콘서트 ‘가짜뉴스’에서 일필휘지의 시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알파고 시나씨씨. 지난 18일 지하철 여의도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재훈 기자
KBS 개그콘서트 ‘가짜뉴스’에서 일필휘지의 시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알파고 시나씨씨. 지난 18일 지하철 여의도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재훈 기자

100% 완벽하지 못한 발음만 빼면 영락없는 한국인 개그맨이다. 한국인들의 정서나 생활상을 훤하게 꿰뚫고 있다. 바둑에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있다면, KBS 개그콘서트에는 알파고 시나씨(31)씨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가짜뉴스’ 코너에서 그가 일필휘지로 시 한 수를 짓는다. ‘밤만 되면 네가 생각나’. 진행자인 개그맨 윤형빈이 ‘19금’ 우려를 나타낸다. 하지만 시 제목은 ‘라면’이다. 이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설명이 술술 나온다. “배 속에 거지가 든 것도 아닌데 밤만 되면 너무 땡겨요. 하나 끓이면 모자라고 두 개 끓이면 양이 너무 많아요.”

’끝나지 않는 너’. 시 제목은 송년회다. “한국 송년회 개많아요. 대학, 회사, 터키 친구, 국제부 기자, 서예 동아리, 개콘 송년회. 근데 내년에는 신년회도 있어요.” 무릎을 탁 칠 만한 정곡을 때리는 위트다.

알파고씨의 주 직업은 기자다. 현재는 아시아기자협회 월간지 편집장이다. 2010년부터 6년간 터키 최대 민영언론사인 ‘지한통신사’에서 한국 순회특파원으로 일했다. 미얀마 로힝야 학살 현장취재를 위해 국경까지 갔다가 잡힐 뻔하기도 했고, 필리핀 민다나오섬 반군 캠프 취재도 다녀왔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알파고씨는 터키 으드르시 출신에 16살이던 2004년 대전으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서 깊은 이스탄불기술대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카이스트에서 과학도로서 공부하기 위해 왔는데 한남대 어학원에 다니면서 스스로 어학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게 됐다.

“제가 떠드는 걸 좋아하더라구요.”(웃음) 역사와 국제관계에 관심이 깊은 그는 1년6개월간 한국어를 공부한 끝에 2006년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알파고씨가 개그콘서트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스탠딩 코미디다. 지한통신사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비리 등을 폭로하며 집권세력과 위험한 대립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2016년 7월 터키 군부의 쿠데타가 실패하자 집권세력은 기다렸다는 듯 지한통신사 문을 닫아버렸다. “졸지에 백수가 돼 버렸죠.”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고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일을 계속하게 됐다.

개그콘서트 작가들은 지난 8월 개편 후 무대에 세울 신선한 개그맨들을 찾기 위해 홍대와 대학로 소극장을 헤집고 다녔다. 이 때 ‘가짜뉴스’ 코너의 장희정 메인 작가 눈에 알파고씨가 들어왔다. 장 작가는 “한국인이 공감할 주제를 선정하고 개그맨도 어려워하는 스탠드업 개그 방식으로 풀어내는 알파고씨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타고난 유머와 위트에 기자의 예리함이 담긴 촌철살인 멘트도 10월 중순 개그콘서트 합류에 도움이 됐다.

다재다능한 그는 노력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서예 동아리 활동을 했고 모국어인 터키어와 한국어, 영어, 중국어(대학에서 중문과 복수전공), 일본어 등 5개국어를 할 줄 안다. 우리나라와 학제가 비슷한 터키에서 초등학교와 고교에서 월반을 한번씩 했다는 말까지 들으면 그의 겸손과 달리 천재형 인간으로 느껴진다.

그에게 개그는 단순 예능이 아니다. 그는 이를 “생예능이 아니다”고 친근하게 표현했다. 예능의 옷을 입었지만 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였다. 실제 그는 두꺼운 역사 관련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첫 번째 책 제목은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년)다. 세계 화폐 속에 나타난 독립운동 역사와 인물을 생생히 그렸다. 두 번째 책은 ‘세계 독립의 역사’(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0개국의 독립운동을 한국의 독립과정과 비교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도 역사 관련 창작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고 했다. 개그맨으로선 “곧 직접 짠 개그 꼭지를 시청자에게 선보이겠다”고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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