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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식 “대통령 언급 전까지 ‘민식이법’ 관련 부처선 예산 없다고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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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식 “대통령 언급 전까지 ‘민식이법’ 관련 부처선 예산 없다고만 해”

입력
2019.11.27 04:40
수정
2019.11.27 09:3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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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일터뷰] ‘민식이법’ 주도 강훈식 민주당 의원

민식이 부모님 ‘법안 빛 못볼까’ 통곡ㆍ호소, 몇번이나 좌절

靑 2차 청원 후 방송 타며 ‘동력’… 여론 관심 키우려 노력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 한국일보의 ‘여의도 일터뷰’는 정쟁과 정치공학 그 너머, 여의도 1번지 국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에 관한 인터뷰’, ‘일터에 관한 조망(View)’을 통해 한 발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일하는 여의도’의 표정을 담습니다.

‘민식이법(스쿨존 내 신호등ㆍ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이 국회에서 처음 다뤄진 건 주말인 10월 13일이다. 법안 발의자이자 민식이의 옆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아산을)이 민식이 부모님과 함께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자 국회 기자회견장에 선 날이다. 공교롭게 같은 날 당정청회의에서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해 스포트라이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쏠렸다. 이 탓에 민식이법은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고, 민식이 부모님은 행여 법안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까 통곡하며 호소했다.

민식이 부모님의 절박한 호소에 여론은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언급하면서 법안은 21일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40일 만에 상임위 문턱을 넘자 대통령 언급 덕분에 ‘초스피드’로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법안 처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강 의원은 “몇 번의 좌절을 겪었고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를 보고도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던 가슴 아픈 사연에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국회의원이 될까 두려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만난 강 의원은 민식이의 49재(10월 말) 전까지 부모님과 민식이의 억울함을 풀고, 어린이 생명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마침 인터뷰 당일 또 다른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에 이름을 올린 해인이와 태호 부모님이 강 의원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법안에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전했다. 다음은 강 의원과의 일문일답.

_민식이 사고를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인가.

“9월 11일 사고 일주일 뒤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한 아이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 주변에도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일주일 뒤 부모님이 지역 언론과 인터뷰하신 걸 봤고, 지역 내 한 기자가 이 이야기를 해 관심을 갖게 됐다.

부모님을 처음 뵌 건 9월 말 지역구 내 한 고등학교 행사였다. 부모님이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인사를 나눴고, 며칠 뒤 시의원과 함께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법안을 내기로 했다.”

강훈식(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산 스쿨존 교통사고 희생자인 고(故) 김민식군의 부모가 10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청원 참여 호소와 '민식이 법' 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식군은 지난달 아산 온양중학교 정문 앞 신호등과 과속카메라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동생과 건너오다가 차에 치여 숨졌다. 뉴스1
강훈식(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산 스쿨존 교통사고 희생자인 고(故) 김민식군의 부모가 10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청원 참여 호소와 '민식이 법' 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식군은 지난달 아산 온양중학교 정문 앞 신호등과 과속카메라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동생과 건너오다가 차에 치여 숨졌다. 뉴스1

_아이 이름을 딴 법안이라 부모님도 망설였을 텐데, 법안에 특히 신경 써달라고 한 부분이 있나.

“처음 이 분들을 뵀을 때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슬픔이 상당히 컸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있지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슬퍼하셨다. 어머니가 하는 식당 앞에서 아이를 치고도 질질 끌고 간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굉장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에게 가중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점과, 과속단속카메라와 방지턱만 있었다면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_법안을 준비하면서 부모님께 당부 드린 점은 있나.

“처음부터 ‘이 법이 쉽게 처리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각오하셔야 한다’고 했다. 나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법안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정기국회가 두 달도 남지 않아 통과를 자신할 수 없었다. ‘제가 해 볼 테니 힘 모아서 같이 잘 해봅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희망고문이 될까 부담이 컸다. 국회의원이지만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란 걸 알기에 나 조차도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두려움이 있었다.

또 하나는 자칫 ‘감성팔이’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부모님과 ‘아이가 죽었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하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걱정을 나눴다. 하지만 부모님이 ‘법안 발의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강한 의지를 보여서 하게 됐다. 또 너무 억울하고 슬픈 일이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_법안 발의 이틀 뒤 주말인데도 기자회견을 했다. 보통 주말에는 이런 기자회견을 잘 안 하지 않나.

“저희 입장에선 법안 발의에만 사고 이후 한 달이 걸렸다. 아이의 49재가 10월 말이었는데 그 때를 목표로 최대한 노력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힘들다’며 기자회견장에 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 아버지와 같이 서기로 용기를 내셨다.”

_기자회견이 끝나고 부모님께 처음 건네신 말씀은 무엇인가.

“’이제 일을 시작하게 돼 앞으로 연락이 많이 올 텐데 여론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다. 최대한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데,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자식의 죽음을 계속 알려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나. 또 이런 희생자의 이름을 단 법안은 잠깐 주목을 받지만, 그 이후 관심이 꺼지면 진행이 안 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_법안을 처리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청와대 국민청원이 중요했다. 1차 청원이 끝난 게 민식이 49재쯤인 10월 말이었다. 국민청원이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으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란 기대와 절박함이 있었다. 가급적 이 사연과 법안을 많이 알려 여론의 관심을 키우는 게 중요했다. 국민의 관심이 꺼지면 법안은 절대 통과되지 않는다고 보고 여기에 집중했다.”

.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_법안 발의부터 행안위 소위 통과까지 40일 정도 밖에 안 걸렸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40일이라고 하지만 고비가 상당히 많았다. 1차 청원이 11만명 정도에 그쳐 좌절을 겪었다. 그때 예결특위에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안전 예산만이라도 증액시켜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2차 청원이 올라간 뒤 언론 보도가 계속 나가고 민식이 부모님이 방송에 나오자 청원은 30~40만명까지 몰렸다. 그때 한음이법, 해인이법 등 다른 어린이 생명안전법안까지 같이 올라와 파급력은 더욱 컸다.

_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민식이법을 언급해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민과의 대화는 19일이었는데 민식이 부모님 사연이 방송 전파를 탄 게 18일 저녁이었다. 그날 하하 등 연예인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렸고, 이튿날까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올라가 있었다. 문 대통령 언급 전까지 국민이 많은 지지를 보내주셨다. 다만 문 대통령께서 언급하시고 행정부 태도가 많이 달라진 건 분명하다. 대통령 언급 전까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각 부처는 ‘쓸 수 있는 예산이 없다’는 답만 되풀이하는 상황이었다.”

_이제 본회의 처리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법안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까.

“오늘 당과 정부가 당정협의를 열었는데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전부를 처리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법안 처리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린이 생명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는 게 필요하다. 법을 강화하고 스쿨존을 눈에 띄게 표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에선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면 법은 필요 없지 않을까. 이제 아이들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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