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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울린 허지웅의 구하라 추모 글…“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할 모든 청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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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울린 허지웅의 구하라 추모 글…“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할 모든 청년들에게”

입력
2019.11.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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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겸 작가 허지웅, 항암투쟁 경험 소개하며 응원 

 “주변에 절망하고 있을 이들 돌봐달라” 위로 

방송인 겸 작가 허지웅. 인스타그램 캡처
방송인 겸 작가 허지웅. 인스타그램 캡처

방송인 겸 작가 허지웅씨가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사고 있다. 허씨는 전날 숨진 채 발견된 가수 겸 배우 구하라를 추모하고 충격을 받은 그의 팬들과 대중을 위로했다.

허씨는 최근 SNS와 방송에서 암 투병기를 고백하며 다른 암 환우를 향한 응원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이날 글에서도 항암치료를 받던 중 고통스럽던 날을 돌아보며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씨는 글에서 “‘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이 부어서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에선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략)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며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당시를 묘사했다.

허지웅 인스타그램 캡처
허지웅 인스타그램 캡처

허씨는 건강을 회복한 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날 밤’을 다시 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글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라고 회고했다. 허씨는 또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허씨는 좌절을 겪는 이들을 향한 위로를 강조했다. 그는 “‘망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며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전했다.

허씨는 말미에서 전날 사망한 구하라를 애도하며 글을 읽는 이들에게 “주변에 한줌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청년들을 돌봐달라”고 당부했다. 또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을 안내했는데, 그는 글에서도 어딘가에서 좌절을 겪은 이들에게 “끝이 아니라고 전해달라”고 밝혔다.

그가 추모한 구하라는 전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구하라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인 및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허씨의 글을 읽은 이들은 그의 SNS에 “눈물이 난다. 감사하다”(ju***),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아직은’이라며 생각을 부여잡는다”(sa*****)며 공감하는 의견을 담은 댓글을 달았다.

허지웅 글 전문

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이 부어서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에선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 속엔 다른 사람이 있었고 하루 종일 구역질을 하다가 화장실로 가는 길은 너무 높고 가팔랐다.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알약 스물 여덟 알을 억지로 삼키다 보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을 버티고 몇 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프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 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 테다. 망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모든 청년들에게 바칩니다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ps.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필요 이상으로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응원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주변에 한줌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청년들을 돌봐주세요. 끝이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구하라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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