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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광장 민주주의’ 없는 ‘광장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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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광장 민주주의’ 없는 ‘광장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입력
2019.10.07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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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던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던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 한국에서는 ‘파당적 광장정치’가 광장 민주주의(agora democracy)를 질식시키고 있다. 각종 파당들은 주말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세 몰이 집회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 민주화의 산실인 광장은 분열되었다. 분노조절장애자들의 막말,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유투버들의 여론조작, 정치꾼들의 대중선동, 정당 이데올로그들의 근거 없는 정치적 공격으로 민주광장은 파편화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우리는 광화문광장에서 공적 토론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낸 광장 민주주의를 경험하였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의 의회’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것을 요구하였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이에 응답하여 탄핵을 소추하였고, 헌법재판소는 적법절차에 따라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였고, 그 후 국민들은 헌법절차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2017년 촛불혁명은 광장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잘 결합한 헤테라키 (heterarchyㆍ혼합) 민주주의였고, 한국의 명예혁명이었다.

그런데 한국 민주주의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찬사를 받은 지 2년이 되지 않아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광장이 다양한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토론하고 숙의하는 민주적 광장이 되지 못하고, 파당적 이익들이 충돌하는 발칸(Balkan)화된 광장정치가 된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대표가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의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표의 실패’가 의사당에서 광장으로 옮겨와서 파당적 광장 정치를 낳고 있는 것이다. 파당적 광장 정치는 파당 집단 간의 분열, 증오와 유혈적 대결로 내란 또는 내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으로 시작된 대립과 갈등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광장 역시 쪼개졌다. 광장은 더 이상 한국 민주화의 산실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파당 정치의 근거지로 전락해버렸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에서 경찰이 설치한 펜스를 사이에 두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위)와 문재인 퇴진, 조국 구속을 요구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대한민국이 둘로 갈라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으로 시작된 대립과 갈등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광장 역시 쪼개졌다. 광장은 더 이상 한국 민주화의 산실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파당 정치의 근거지로 전락해버렸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에서 경찰이 설치한 펜스를 사이에 두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위)와 문재인 퇴진, 조국 구속을 요구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그렇다면 파당적 광장 정치를 치유하고 광장 민주주의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우리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와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분열된 광장 민주주의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1만명이 넘는 아테네 시민들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위치한 넓은 광장에 모여서 자발적으로 국정을 토론하고 숙의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였다. 모든 시민들은 광장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유(isegoria)가 있었으나, 폭력적인 행동은 금지되었고 평화로운 토론만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좀 더 설득력 있게 개진하기 위해 말을 잘하는 방법, 즉 수사학을 배웠다. 수사학 학자를 소피스트라 불렀고, 그들은 구술문화 시대의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끈 직업 정치인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광장에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공성, 자유, 책임성, 법 앞에 평등(isonomia)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실현하였다. 시민의 발언은 반드시 공공성에 부합되어야 했고 시민들은 자신의 발언과 제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기존의 법을 위반하거나, 불법적인 제안을 하거나, 동료 시민을 조롱한 행위 등을 법률에 의해 처벌하는 그라프 파라노몬(Graphe paranomon)에 의해 아테네 민주주의의 공공성과 책임성이 보장되었다.

또한 아테네는 공공성을 확보하고 덕성 있는 중산층이 다수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극단적인 부, 명예, 인기, 권력을 가진 시민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ostracism) 제도를 운영하였다. 아테네는 도편추방제를 통해 극단주의자들이 광장을 장악하는 것을 방지하였고, 양극화를 완화함으로써 부, 명예, 인기, 권력에 있어서 중간에 위치한 ‘중위수 시민’(median voter)이 주도하는 중용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근대 광장 민주주의는 위르겐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부르주아 공론장(Offentlichkeit)에서 발견된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아테네의 민회에 비해 훨씬 작고, 덜 개방적인 미니 광장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은 공공장소인 영국의 커피하우스, 프랑스의 살롱, 독일의 다과회(Tischgesellschaften), 독일 상인들의 견본 시(Messe)에 모여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이용하여 문학, 예술, 연극, 음악을 토론하였다. 부르주아 공론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독특한 복장, 신발, 예절을 갖추어야 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평화적으로, 말로 소통한다는 부르주아 에티켓 사회가 부르주아 공론장과 함께 발달하였다. 소통, 공공성, 자유, 법치주의에 기반해서 형성된 공론장에서 부르주아들은 점차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정치적 참정권 확장운동은 노동계급에까지 확대되어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 유럽에서 보통평등선거권이 실현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항상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4ㆍ19학생혁명, 1987년 민주화 항쟁, 박근혜 대통령탄핵운동 등과 같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은 광장과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위대한 광장 민주주의의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광장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광장으로의 동원규모에 집착하고 있는데, 이러한 메갈로매니아(megalomania)적 동원규모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동원규모 경쟁은 광장을 더욱 분열시키고, 파편화시키며, 적대적으로 만든다. 유럽의 공론장은 규모가 아니라 소통의 내용과 공공성의 실현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가능한 모든 시민들이 광장에서의 토론과 숙의에 참여하는 고대 아테네의 메갈로매니아 민주주의는 근대 그리고 탈근대 민주주의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직접 소통하지 않아도 근대적 인쇄문명과 탈근대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극우 기독교(Christian Right) 종교인, 군국주의적 친일인사, 극우 반공주의자, 극좌 공산주의자와 같은 극단적인 인사들은 광장에서의 공론장에 참여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부, 권력, 인기 등에서 극단적인 인사들을 추방해야 절제, 타협을 선호하는 중산층이 다수가 되는 덕성 있는 중용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언급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광주과기원 석좌교수 

 ◇임혁백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대표 이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로 이화여대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했다.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치개혁 연구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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