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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됐던 김동철 목사 “내 스파이활동 돕다 처형된 北 6명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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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됐던 김동철 목사 “내 스파이활동 돕다 처형된 北 6명에 미안”

입력
2019.08.11 17:54
수정
2019.08.11 20:3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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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 받다 두 번 기절… 단백질 보충 위해 유충까지 먹었다”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서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오른쪽 두 번째) 목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서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오른쪽 두 번째) 목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의 스파이 활동을 돕다가 처형된 북한인 6명에게 미안합니다.”

북한에 31개월간 억류됐다가 지난해 5월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6) 목사가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심경을 밝혔다. 그는 “내게 일어난 일로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저 살아서 북한을 탈출한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으나, 자신 때문에 6명이나 목숨을 잃은 사실에 대해선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김 목사의 북한 억류 당시 뒷얘기를 전한 9일(현지시간) NYT 보도에 따르면, 김 목사는 1980년대 부친의 권유로 미국에 이민을 간 뒤 목사가 됐다. 2000년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간 그는 2002년 대북사업을 위해 북한 당국에서 나선지구 거주 허가를 받았다. 사재 280만달러를 털어 현지에 두만강 호텔을 열었고, 연 수입의 3분의 1인 40만달러를 북한 정부에 내며 사업을 이어 갔다.

김 목사의 삶이 극적으로 바뀐 건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업 차 한국과 중국을 오가던 그에게 한미 정보기관이 ‘북한 핵ㆍ미사일 관련 정보를 수집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는 “북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떻게 이러한 정권이 지구상에서 살아남는지 의아해졌고, 혼란스럽고, 궁금해졌다”고 수락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다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결국 체포됐고, 그 이후는 끔찍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7개월간 나선과 평양의 안전가옥에서 조사를 받으며 물고문으로 두 번이나 기절했다. 이듬해 4월 간첩ㆍ체제전복 등 혐의로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은 뒤, 평양 외곽의 노역소에 끌려가 ‘수인번호 429’를 달고 언 땅을 판 뒤 다시 묻는 등의 강제노역을 했다. 제공받은 식사는 현미와 발효된 콩 수프, 무 피클 세 조각이 전부였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유충까지 먹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무장 경관 8명이 24시간 내내 감시했다. (북한은) 원한다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그는 “애증의 나라”라면서 “북한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통제와 노예 시스템의 나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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