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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지켜준 낙엽ㆍ생명수 된 장맛비… 조은누리 기적생환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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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지켜준 낙엽ㆍ생명수 된 장맛비… 조은누리 기적생환 ‘수호천사’

입력
2019.08.04 17:49
수정
2019.08.05 00:3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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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여명 투입 수색 확대 주효… 마을 주민들 적극 협조도 큰 도움

산악수색 작전에 특화된 특공대와 기동대 장병들이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야산에서 실종된 조은누리양 수색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뉴스1
산악수색 작전에 특화된 특공대와 기동대 장병들이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야산에서 실종된 조은누리양 수색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뉴스1

충북 청주 야산에서 실종됐던 조은누리(14)양이 열흘 만에 생환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조양이 때마침 생존에 적합한 곳을 찾았고 며칠간 장맛비가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구조를 포기하지 않고 능선 너머 보은군까지 수색을 확대했던 당국과 집안 일처럼 팔을 걷어붙인 마을 주민들 또한 기적의 드라마를 써간 주역이었다.

조양이 발견된 곳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신문리 산 35번지 계곡 한 지점. 지난달 23일 조양이 어머니 일행과 헤어진 가덕면 내암리 등산로에서 무심천 발원지 방향으로 약 1.7㎞ 떨어진 곳으로, 탑산을 시작으로 북동쪽으로 길게 뻗은 520고지 너머 7~8부 능선 부근이다. 남향이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응달로, 인적이 드물어 낙엽이 1m가량 쌓여 있는 계곡 지형이다.

경찰은 조양이 등산로 갈림길에서 길을 헤매다 깊은 산중까지 올라가 조난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양이 일행과 헤어져 등산로 아래 물놀이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다시 올라가는 길에 갈림길에서 길을 잃고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추정이다. 실제 당초 조양이 일행과 함께 물놀이를 했던 등산로 아래에서 무심천 발원지 사이 2개 지점에 갈림길이 있다.

군경 수색팀에 따르면 조양은 발견 당시, 세로 60~70㎝, 가로 50~60㎝ 가량의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쪼그려 앉아 실신해 있었다. 하반신과 양팔 등 신체 좌우를 낙엽이 약 30㎝ 깊이로 덮고 있었다. 왼쪽으론 흙 두덩이, 오른쪽으론 약 1m 높이의 흙 언덕이 있었다. 쪼그려 앉아있다가 의식이 희미해지며 낙엽 속으로 조금씩 몸이 내려갔고, 계곡 바람에 의해 낙엽이 몸을 덮은 것으로 보였다는 게 당시 수색팀의 설명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조은누리양 실종부터 발견까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조은누리양 실종부터 발견까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전문가들은 조양이 머물렀던 장소가 생존에 적합한 곳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종 기간 무더위가 이어졌지만 숲이 만든 그늘로 급격한 체온 변화를 방지할 수 있었으며 주변의 낙엽 또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마침 내린 장맛비는 조양이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생명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연수 전 충북산악구조대장은 “장맛비는 물을 공급했고 주변에 쌓인 낙엽이 이불 혹은 지붕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양이 산중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면서도 “조양의 생환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흘을 버티며 보낸 조양의 구조 신호는 다행히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군경 수색팀에 전달됐다. 경찰은 수색이 10일째에 접어들자 인근 군 병력과 경찰 기동대를 중심으로 1,300여명을 동시에 투입, 보은군 지역으로까지 수색 범위를 확대됐다. “아이 성격상 산을 떠나진 않을 것이다”고 했던 가족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 결정이었다. 하루 세 차례 진행된 수색전략회의에도 가족이 참여했고, 가족의 의견은 수색에 반영됐다. 경찰은 지난해 8월부터 ‘피해자 가족의 수색참여 등 지원 조치’를 골자로 한 ‘실종수사업무 매뉴얼’을 시행하고 있다.

수색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인근 주민들도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내암리 새마을지도자인 박은영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군경 당국의 수색작업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씨는 조양이 선 정사 너머 보은군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기하면서 수색범위 확대를 주장했다.

구조 직후 충북대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조양은 점차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에 따르면 실종 당시 탈수 증세가 심했던 조양은 가족을 만나자마자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고 싶다는 말을 가장 먼저 전했다고 한다. 경찰은 조양이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5일쯤 면담 형태의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청주=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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