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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내는 결국 징용문제 한국 압박… 미국 본격 관여 전에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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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내는 결국 징용문제 한국 압박… 미국 본격 관여 전에 ‘쐐기’

입력
2019.08.02 17:59
수정
2019.08.02 22:3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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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리스트 배제 ‘7일 공포ㆍ28일 시행’ 못박아… 겉으론 “대항 조치 아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2일 도쿄 경제산업성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2일 도쿄 경제산업성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제외를 강행한 배경은 미국의 관여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전에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구조를 확실히 구축해 놓겠다는 측면이 크다. 수출 규제 품목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든 뒤 경제 보복의 시발점인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속내다. 사실상 일본이 한국의 정치, 경제 전 분야를 쥐락펴락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장관은 이날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해 사전에 입을 맞춘 듯 “대항조치가 아니다”,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화이트(백색) 국가인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철회하고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과 같이 취급하는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화이트 국가가 아닌 국가들을 끌어들여 이번 조치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한일에 각각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중단과 화이트리스트 제외 중단을 촉구하며 분쟁 중지 합의 검토를 제안한 미국의 관여를 피해 가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세코 장관은 미국이 관여 움직임에도 결정을 강행한 배경에 대해 “미국에 이번 수출 관리 운용 재검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과 함께 한국이 대응 카드로 고민 중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 관련해 미국과 한국에서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본 측은 각의 의결 이후 공포와 시행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일부 관측과 달리, ‘7일 공포ㆍ28일부터 시행’ 일정을 못 박았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이날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한다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수출 규제에 초점을 맞춘 상황에서 (일본이) 중재를 받아들인다면 징용 문제가 방치될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관여에 앞서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수단을 확보, 한국에 징용 문제 해결을 압박하겠다는 일본 측 방침은 이전부터 확고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등을 거친 후 미국의 중재안과 한국의 대응을 검토하면서 중재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선 “사법부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중단에 나설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때문에 확실한 담보 없이 미국의 중재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시행되는 28일 이후 일본 정부는 여러 상황에 따라 수출 규제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한국의 의표를 찌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 측이 압류자산 매각 중단 등 징용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집적회로ㆍ반도체 제조장비 △정밀공작기계 △탄소섬유 등을 중심으로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품목으로 전환해 압력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통해 한일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불확실성이 높아져 우려가 제기된다면 일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불만이 커질 경우 수출규제를 느슨하게 가동하면서 일본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술을 쓸 수 있다. 일본이 “금수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수출 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이 기본적으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후 운신의 폭을 넓혀놓으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이날 담화를 통해 “징용 문제라는 정치적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역 문제를 활용하는 것은 정경분리 원칙에 반한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또 재일한국인으로 구성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도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는) 경제 보복으로 지극히 침략적인 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명백하다”며 “부당한 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통련은 오는 8일 일본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한편,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각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해야 화이트 국가가 되는 조건을 얻을 수 있는지는 모두 일본이 한국에 가르쳐 줬다”며 “한국이 이를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또 “불화수소는 사린가스 제조에 쓰이는데, 그런 물질이 어디로 대량 유출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한국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근거 없는 의혹을 또다시 제기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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