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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참사 두 달… 정신질환 환자지원ㆍ관리 더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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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참사 두 달… 정신질환 환자지원ㆍ관리 더 어려워졌다

입력
2019.07.01 04:40
수정
2019.07.01 09: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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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센터, 응급입원 늘어 업무량 폭증

직원 75% 비정규직… 이탈 가속

일부 지역 센터는 결원 보충 못해

“정신질환자들이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찾아와도 정신건강전문요원을 만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두 현장에 출동했기 때문이지요. 경찰이 환자로 의심되는 사건에 예민해져서 예전 같으면 넘어갈 사건도 ‘환자가 흉기를 들 것 같아요’라면서 요원을 호출합니다. 5월 응급입원 건수가 1월보다 57%나 증가해 퇴사자만 늘고 있습니다.” (윤미경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 현황과 등록관리 회원 수. 그래픽=신동준 기자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 현황과 등록관리 회원 수. 그래픽=신동준 기자

진주 방화ㆍ살인사건(4월 17일)이 발생한 지 두 달여가 흐른 가운데, ‘정신건강의 보건소’인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업무량 폭주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 보충 등 보완책이 없을 경우, 정신질환자 관리에 구멍이 뚫릴 가능성이 높다.

업무량이 폭증하는 이유는 경찰이 환자발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응급입원’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요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입원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자ㆍ타해 위협이 큰 사람을 발견했을 경우 경찰관이 정신센터에 1차로 환자 상태를 평가를 의뢰하고, 최종 판단은 의사가 내리는 식으로 이뤄진다. 현장에서는 응급입원 요구에 대응하느라 정신센터에 등록된 기존 환자들의 사례관리는 뒷전에 놓이게 됐다는 위기감이 크다. 정부는 지난 5월 관련 대책을 내놓으면서 치료를 멈춘 환자에 대한 ‘월 4회 이상 대면 집중 사례관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인력충원이 없는 상황이라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동대문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응급입원은 올해 4월까지 10건에서 진주 참사 이후 지난달 21일까지 32건으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장 권한으로 환자를 입원시키는 행정입원도 1건에서 9건으로 늘었다 이상민 동대문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사례관리 회의를 하다가 응급신고에 뛰어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아동청소년사업, 자살예방사업, 중독사업, 재난대응사업 등 기존 업무도 줄일 수 없는 처지다. 결국 센터를 떠나 업무부담이 적은 병원, 사회복지시설로 이직하는 요원들이 늘어나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동대문정신건강보건센터는 올해 들어 2명의 요원들이 이직했지만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 이 센터장은 “예전엔 지원서가 30개 이상 도착했는데 최근에는 열악한 일자리라는 소문이 나면서 지원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윤미경 부센터장은 “우리도 지원자가 별로 없는데,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5월 내놓은 중증 정신질환자 보호지원 우선 대책과 관련한 예산 확보 현황. 이 중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 처우 개선은 재정당국의 반대로 빠졌다.
정부가 5월 내놓은 중증 정신질환자 보호지원 우선 대책과 관련한 예산 확보 현황. 이 중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 처우 개선은 재정당국의 반대로 빠졌다.

현장에서는 직원들의 불안한 사회적 지위도 퇴사자가 증가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정신센터 67%가 민간 위탁으로 운영돼 3년마다 운영주체의 재계약 여부를 정한다. 전체 직원의 75%에 이르는 비정규직 직원들로서는 매번 고용이 승계될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응급신고 현장에서 만나는 경찰관, 소방관, 정신건강전문요원 중 정신건강전문요원만 비정규직”이라며 “비정규직 신분으로 위험부담까지 감수하고 싶겠느냐”고 지적했다.

요원들의 이탈 현상은 더욱 가속할 전망이다. 올해 10월부터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하는 환자 가운데 자ㆍ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의 정보를 정신센터에 제공하는 새로운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관리대상 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법무부가 최근 보호관찰을 명령받은 정신질환자의 정보를 정신센터에 공유하는 법을 입법예고하면서 현장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지난 21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100여명이 넘는 정신건강전문인원들이 참여해 법무부의 움직임에 불만을 터뜨렸다. 범죄자도 정신질환자라면 정신센터에서 당연히 돌봐야 하고, 그래야만 재범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력난과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폭력성은 정신질환의 병적 증상이 아니지만, 알코올이나 약물 문제가 있는 정신질환자는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 재범률 역시 일반 범죄자보다 높다.

서울 소재 한 센터의 경력 9년차 요원 연모씨는 “센터가 관리하던 보호관찰 정신질환자가 다른 정신질환자에게 해를 입혀 관리를 잘 받던 다른 환자들까지 분위기를 흐린 적이 있다”면서 “이런 경우 어떻게 피해를 보상할지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요원은 “성범죄자와 피해자가 같은 정신센터에 다니면 어떡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세미나에 참석했던 법무부 쪽에서는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발생 가능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이에 대해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인력 충원은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재정당국과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악성댓글에서 사회적 편견을 체감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정신질환자들도 드물지 않다.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악성댓글에서 사회적 편견을 체감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정신질환자들도 드물지 않다.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모습. 최근 대학병원들도 '돈이 안 되는' 입원병동을 줄이면서 증상이 일시적으로 심각해진 급성기 환자들이 입원해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모습. 최근 대학병원들도 '돈이 안 되는' 입원병동을 줄이면서 증상이 일시적으로 심각해진 급성기 환자들이 입원해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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