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덕분에 소설 쓰는 저는 이렇게 말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힘이 있습니다. 권력과 정치와 제도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합니다. 전체를 바꿀 수 없지만 한 사람을 지극히 바꾸어냅니다.
잊히고 묻힌 이를 이야기로 초청합니다. 어둠 속에 잠긴 사연과 사건에 빛을 비춥니다. 지워진 역사를 다시 씁니다. 그림자들에게 무대를 주고 목소리를 잃은 존재에게 말을 주고 몸 없는 영혼에게 삶을 만들어줍니다. 과거로 흘러간 일. 해프닝으로 남은 비극. 단순한 숫자에 갇히고 사라져 버린 피와 살과 뼈. 모두 되살려냅니다.
5월 18일의 광주와 4월 3일의 제주. 뉴스와 기록은 결코 닿지 못하는 사람의 진실 속으로 기꺼이 투신합니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아무 날도 아니었을 숱한 날들과 아무도 누구도 아니었을 사람들에게 이름과 얼굴과 의미를 부여합니다.
전쟁과 사태 속에 칼과 총이 아닌 이야기와 문장을 들고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과 빵이 아닌 말과 글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은 설명하고 지시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음악이고 미술이고 때론 사람의 숨결이고 영혼입니다.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밝은 눈과 그 속을 헤쳐나갈 담력을 줍니다.
이(理)의 지식으로 가득한 도시와 문명의 머리 위로 하늘처럼 구름처럼 펼쳐진 문(文)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내리는 빛처럼 비처럼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는 이야기의 날씨가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소설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겠지. 하지만 사람은 바꾼다. 쓰는 자는 바뀐다. 읽는 자는 바뀐다. 이것은 내가 경험으로 깨닫게 된 유일한 믿음이다." 이 믿음을 더 믿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소설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겠다는 제 인식의 한계와 체념까지도 무너지길 소망합니다. 관심과 축하 속에서도, 이해와 오해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 회복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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