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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평소 완충 않는 게 낫지만, 충전율 90% 제한이 안전 보장은 못 해"

입력
2024.08.21 17:42
수정
2024.08.21 18:3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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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두고 갑론을박
"충전율·충전속도 높을수록 위험 증가
90%와 100%는 위험에 큰 차이 없어
실명제 도입하고 관리 기술 강화해야"

지난 19일 인천서부경찰서에서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에 대한 3차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난 19일 인천서부경찰서에서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에 대한 3차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국내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배터리 과충전에 따른 위험성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전기차 화재를 예방한다며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지하주차장에 배터리 충전율 90% 이하만 출입하는 대책을 추진하자, 현대차·기아가 “배터리를 100% 완전충전(완충)해도 안전성엔 문제가 없다”고 정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배터리 충전율이 높을수록 전기차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데엔 동의했다. 다만 충전율을 제한하는 도식적인 접근보단, 전기차를 제어하는 첨단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기술 강화나 배터리 제조사를 밝히는 '배터리 실명제' 도입 등이 화재 사고를 막는 현실적인 대책이 될 거라는 지적이다.

"100% 충전 말아야" VS "충전율 문제 아냐"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주최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 연사로 나선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포럼에 앞서 한국일보에 “평소 전기차 배터리를 100% 완충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배터리 화재의 원인이 되는 '수지상 결정(덴드라이트)' 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지상 결정은 전기차를 충전할 때 배터리 양극에 있던 리튬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음극 입구에 바늘 형태로 쌓이며 사방으로 자라는 구조를 말한다. 배터리 충전율과 충전 속도가 높을수록 수지상 결정이 많이 성장하는데, 이게 양극에 닿으면 배터리 화재로 이어진다. 도 연구원은 “수지상 결정 성장은 배터리 충전율이 80%에서 90%가 될 때보다 90%에서 100%로 가는 구간에서 훨씬 많이 일어난다”며 “화재에 따른 폭발력도 충전율 80%를 기준으로 하면 충전율 100%에서 20% 정도 늘어나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에 평소 완충을 해놓지 않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추진 중인 '배터리 충전율 90% 이하 제한' 조치가 전기차의 안전성을 보장하긴 어렵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충전율을 70% 이하 수준으로까지 확 낮춰 권고하지 않는 이상 충전율 90%가 100%와 비교할 때 안전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다”며 “서울시가 정한 충전율 90% 이하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하기보단 시민들의 충전 불편을 최소화하는 선에 맞춘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배터리 100% 완충이 위험하지 않다는 현대차·기아의 주장이 일리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를 출고할 때부터 배터리가 95~97% 충전됐을 때를 완충(100%)으로 설정, 과충전되지 않도록 충전 공간의 여유분을 '안전 마진'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배터리 전문가는 “배터리 제조사들은 과충전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테스트를 한 다음 제품을 내놓는다”며 “단순히 충전율을 낮춘다고 안전성이 확보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도 연구원은 "회사마다 100% 충전 설정 기준이 다른데 소비자들은 알 수가 없으니 서울시로선 충전율 90% 제한 같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기차 포비아'는 경계해야

결국 전기차 화재 사고를 예방하려면 소비자들이 신뢰성 있는 배터리 제조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선 교수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가능거리가 길어질수록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려 화재 위험성이 커지는데, 이를 컨트롤하는 게 배터리 기업들의 기술력”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소비자들이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배터리에 사용된 양극재 조성 등까지 낱낱이 알 수 있도록 실명제를 도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자사 전기차에 기술력이 떨어지는 걸로 평가되는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를 사용했는데, 소비자들이 이를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팽배해지는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배터리 전문가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역사가 150년이나 되지만 여전히 화재 사고가 발생하는 걸 보면 전기차를 향한 지나친 불안감은 과도하다"며 “충전율을 제한하기보단 배터리의 냉각 시스템 오류 같은 오작동을 감지하는 BMS 기술을 강화해 간다면 전기차의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총 포럼에 참석한 오기용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빈번하게 느껴지는 건 배터리가 자주 폭발해서라기보단 전기차가 지난 5년 동안 많이 보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방청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내연기관차의 화재 사고 확률은 0.01%인 반면, 전기차는 0.0027%에 그친다. 오 교수는 “진화 작업에 내연기관은 1시간, 전기차는 8시간이 걸리고, 소화수도 내연기관이 1톤이면 전기차는 110톤이 필요하다”며 “그러니 전기차 화재가 훨씬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전하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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