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발레단 발레리노 전준혁 인터뷰]
2017년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 입단
9월부터 한국 발레리노 최초 '퍼스트 솔리스트'
대중문화를 통해 알려진 'K컬처'의 매력이 발레를 비롯한 순수예술 분야에서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한때 입단하는 것만으로 주목받았던 해외 유명 발레단 소속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은 세대를 이어가며 더 도드라진다. 세계적 명문인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준혁(26)은 차세대 'K발레' 대표 주자로 꼽힌다.
전준혁의 모든 행보가 '최초'의 기록이다. 발레단 부설 로열발레학교의 첫 한국인 남학생이자, 아시아 출신 남학생으로는 첫 전액 장학생이었다. 로열발레학교 졸업생 중에서만 신규 단원을 뽑는 로열발레단 입단도 한국 발레리노로는 처음이었다. 2017년 입단 당시 한국인 단원은 재일동포 4세 발레리나 최유희뿐이었다. 지난달엔 솔리스트(무용수를 구분하는 여섯 등급 중 네 번째) 승급 1년 만에 퍼스트 솔리스트(세 번째 등급)로 승급했다. 오는 9월 시작하는 2024-2025시즌부터 퍼스트 솔리스트로 무대에 선다. 로열발레단 단원 120여 명은 아티스트, 퍼스트 아티스트, 솔리스트, 퍼스트 솔리스트, 수석캐릭터 아티스트, 최고 단계인 수석무용수의 등급으로 나뉜다.
"혼자 발전 이룰 수 있어 발레에 빠져"
10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전준혁은 "단장님과 시즌을 마무리하는 정례 면담 중 생각지도 못했던 승급 제안을 받았다"며 "주연급 배역을 많이 맡지 않았던 터라 승급은 예상 밖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퍼스트 솔리스트가 되면 배역 비중은 커지고 출연 횟수는 적어진다"며 "몸 관리에 시간을 더 쓰고 더 나은 예술가가 되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혁은 인생이 곧 발레다. 발레하는 가족을 둬 4세부터 발레를 배웠다. 고모 3명이 모두 발레를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을 거쳐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멤버로 활동한 전정아가 둘째 고모, 스웨덴 왕립발레단 솔리스트였던 전은선이 셋째 고모다. 두 살 터울의 형도 어린 시절 함께 발레를 배웠다. 전준혁은 둘째 고모가 운영하던 학원에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해 5세부터 콩쿠르에 나갔다. 2010년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역으로 캐스팅됐지만 발레에만 집중하려 스스로 중도 하차했다.
전준혁은 발레에 빠진 이유에 대해 "사교적 성격이 아니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몸으로 익히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혼자 계속 발전을 이뤄 내는 과정이 굉장한 기쁨이었다"며 "춤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발레는 정확한 동작 이름까지 정해져 있어 규칙대로 익히면 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 남다른 해외 무대"
전준혁은 테크닉이 안정적이고 체공 시간이 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작 그는 재능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토하고 쓰러질 정도로 연습해서" 이룬 성과다. 그는 "매 공연 숨이 멎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떤 동작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며 "은퇴하면 숨이 차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자기 증명에 중독이 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힘들고 기분이 안 좋다가도 무대를 잘 마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든다"며 "관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정말 좋다"고 말했다.
최근엔 발레리노 전민철(20)이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발레리나 이예은(19)이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이 확정되는 등 젊은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이를 두고 전준혁은 "발레가 유럽에서 파생된 춤이니 본고장 무대에 서고 싶은 게 당연하기도 하고, 유럽에선 예술가에 대한 대우와 존경심이 남다르기도 하다"고 풀이했다.
"김연아 선수 같은 무용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게 전준혁의 꿈. "한국 관객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나고 자랑스러운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영국에서는 '아, 이런 예술가가 있었지'라고 관객이 행복한 추억으로 저를 떠올려 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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