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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대 법률가, 승자는?

입력
2024.05.20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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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붙은 의대증원 반대 홍보물.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붙은 의대증원 반대 홍보물. 연합뉴스

“전공의 도대체 너희들은 뭐냐, 유령이냐.” 파업 중인 전공의를 직격한 이 분노가 주목받은 것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의사 측 변호사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싸우지 않고 입만 살아서” 등의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고법에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하자 “대한민국 법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반발한 것이 발단이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는데, 상황판단도 못 하고 사법부 불신 발언으로 제 발등을 찍는 모습에 변호사로서 화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눈치 없기로는 대한의사협회가 한 수 위다. 판결 직후 담당 판사를 향해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지난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사 밑이 판·검사지...수학을 포기한 바보들인데”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조롱보다 판·검사, 변호사를 더 분노케 한 것은 아마 ‘법리’라는 전문 용어를 동원하며 판사보다 법을 더 잘 안다는 듯한 태도가 아닐까. 엄청난 경쟁을 뚫고 쟁취한 법률가의 전문성과 권위가 무시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의사가 이번 의대 증원 과정에서 가장 화난 부분도 바로 전문성과 권위가 손상됐다는 느낌일지 모른다. 한 수 아래로 본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고, 판사가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하는 이 나라 법률 체계가 자신들의 권위를 무시한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양대 전문가 집단인 의사와 법률가의 정면 대결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전문가 바보(Fachidiot)’는 전문가와 바보를 합성한 독일어로, 좁은 전문 분야밖에 모르면서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사람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의사와 법률가 중 상당수가 전문가 바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보통 사람은 그들이 바보인 줄 알면서도 불이익을 덜 당하기 위해 내색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더 빨리 병을 진단하고, 법률해석을 내놓는 세상이 되면, 전문가 바보야말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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