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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을의 추앙' 받는 민희진...그러나 '우리 같은 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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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을의 추앙' 받는 민희진...그러나 '우리 같은 을'이 아니다

입력
2024.05.15 04:30
수정
2024.05.15 10:5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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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신드롬'의 빛과 그림자

직장인, 여성, 기획자로 '불공정' 폭로
'혹독한 자기검열, 사회적 순응' 압박 대리만족
욕설·비속어 '비호감 부메랑' 맞지 않은 이유
'을' 목소리 대변하는 사회적 리더 부재 반작용

"내 새끼" 환호는 공존사회 위축 신호
능력 되면 문제없어? 소영웅주의 그늘
'나만 억울한' 분노사회 자화상
불완전한 공론장 회복 숙제도

뉴진스 등을 기획해 K팝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난 일밖엔 관심이 없다"며 약 8만 원대의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질끈 묶고 나왔다. 민희진 대표가 지난달 25일 연 기자회견에서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을 반박하는 모습. 뉴스1

뉴진스 등을 기획해 K팝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난 일밖엔 관심이 없다"며 약 8만 원대의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질끈 묶고 나왔다. 민희진 대표가 지난달 25일 연 기자회견에서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을 반박하는 모습. 뉴스1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달 25일 연 기자회견은 K콘텐츠 산업 역사에 남을 '사건'으로 3주 넘게 회자되고 있다.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한 하이브 남성 임원진들을 향해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1대 1로 싸우자)"란 비속어로 거침없이 항변한 민 대표는 '국힙(국내 힙합) 원톱'이라 불리며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직장인, 여성, 그리고 호구 고객 즉 '호갱' 취급받던 K팝 소비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그간 당한 '불공정'을 150분여 동안 폭로해 여론이 그의 편으로 돌아선 결과였다.

하지만 '민희진 신드롬'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어도어의 경영자이자 연봉을 제외한 성과금만 지난해 20억 원을 받은 민 대표는 과연 '을'을 대표할 수 있을까.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낸 "내 새끼(그룹 뉴진스)" 주의에 대한 지지는 공존에 대한 위험 신호란 의견도 나온다. 사회적 반향을 낳은 '민희진 신드롬'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짚어 봤다.


'말 좀 예쁘게 해' 사슬 부순 '해방감'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계열사(어도어) 대표로서 본사(하이브)에서 하달되는 지시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직장인의 설움을 끌어내고 ▲남성 임원 집단으로부터 배척받은 여성으로서의 분투와 차별을 호소하며 여성에게 공감대를 자아냈다. ▲돈밖에 모르는 사업가가 아닌 기획자로서 K팝 산업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팬덤까지 그의 편으로 돌려세웠다.

"내가 실적이 떨어지길 해 뭐를 해. 너네(하이브 일부 남성 경영진)처럼 기사를 두고 차를 끄냐, 술을 마시냐, 골프를 치냐. 내 법인카드(사용 내역)엔 야근 식대밖에 없다",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는 게 이렇게 더러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등. 거대 조직(하이브)과 남성 경영진을 향한 민 대표의 저격을 통해 직장인과 여성들은 대리만족했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민 대표는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데도 고분고분하지 않아 '밉상'으로 찍히는 과정을 방시혁 의장이 보낸 '즐거우세요?' 카톡 등 구체적 예시와 쉬운 언어로 표현해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냈다"고 봤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세워진 근조 화환.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의 '집안싸움'을 수습하지 못한 걸 비판하는 내용이 문구로 적혀 있었다. 양승준 기자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세워진 근조 화환.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의 '집안싸움'을 수습하지 못한 걸 비판하는 내용이 문구로 적혀 있었다. 양승준 기자

눈에 띄는 건 "자신의 감정을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하고 싫어하는 것도 대놓고 말하는 게 통쾌했다"(21세, 여성) 식의 청년들의 반응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직위가 낮은 직장인, 여성 그리고 취업을 앞둔 청년들은 말투나 어조, 눈빛 하나로도 꼬투리 잡히거나 감정적이라고 폄하당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도 더 혹독한 자기검열과 사회적 순응 압박을 내면화해 생존해 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끊임없이 '말 좀 예쁘게 해'란 톤 폴리싱(Tone policing)을 요구받아온 상황에서 민 대표의 직설적 발언과 감정적 격양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란 것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 소속 걸그룹인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베끼기) 의혹을 지적하며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직언했다. 그래야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가 균형을 잡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의롭지 않다고 판단되는 리더들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책임을 묻는 태도 등이 세대를 아울러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민 대표에 대한 열광은 그간 젊은 감각을 갖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입장 그리고 일하는 여성의 입장을 그렇게 통쾌하게 대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이브를 비롯해 SM, JYP, 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4개 K팝 기획사에서 여성이 수장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전임연구원은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K팝 산업에서 게임 업계 출신과 남성에 쏠린 하이브 경영진의 인력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과 민 대표가 뉴진스 등으로 보여준 생산이 대조를 이루면서 근본적으로 이 시장에서 더 필요한 능력이 경영 마인드인가 크리에이티브인가의 문제를 새삼 가시화 시켰다"는 걸 민 대표 신드롬의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엔 근조 화환 15개가 세워져 있었다. 화환엔 "매니지먼트 본질은 어디로? 구색만 대기업 빈깡통 하이브"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이브가 민 대표와의 '집안 싸움'을 수습하지 못해 불거진 여러 잡음에 대한 산하 레이블 소속 아이돌 팬들의 항의 표시다.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 모습. 연합뉴스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 모습. 연합뉴스


'불행배틀'로 타인 압도... 짓밟힌 '남의 꿈'

하지만, 민 대표 발언에 대한 열광을 걱정하는 의견도 적잖다. ▲민 대표의 '내 새끼(뉴진스) 주의'에 대한 환호로 '남의 새끼'는 배척되고 공생의 가치가 축소되며 ▲그의 '소영웅주의'가 수많은 조연의 기여와 '이름 없는 자'들의 희생의 가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민 대표의 '내 새끼 주의'는 강력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21세기적 여전사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협업을 인정하지 않는 '소영웅주의'로 비치기도 한다"고 해석했다.

민 대표는 "일 잘한 죄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의 성과 혹은 능력만능주의는 역설적으로 조직에 균열을 내기도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엔 민 대표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는 SM, 하이브 직원의 글들이 올라왔다. "'뉴진스를 내 새끼'라 표현하는 민 대표가 하이브와의 진흙탕 싸움에 멤버들과 부모들을 호명하는 행보가 모순적"이란 반응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격앙된 감정으로 범벅이 된 민 대표 기자회견에 대한 열광은 대중이 자신의 분노를 민 대표에게 투영하여 소비하는 '나만 억울한' 분노 사회의 슬픔"이라고도 꼬집었다.

'시xx끼'를 소리 나는 대로 일본어로 표기한 단어가 지난달 25일 일본 'X'(옛 트위터)에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X캡처

'시xx끼'를 소리 나는 대로 일본어로 표기한 단어가 지난달 25일 일본 'X'(옛 트위터)에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X캡처

민 대표는 하이브 일부 남성 경영진을 "개저씨들"이란 혐오 표현으로 호명해 남·녀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받는다. 온라인엔 '도파민 터지는 민희진 어록' 등의 제목을 단 영상이 쏟아졌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예능 콘텐츠처럼 소비됐다. 그 사이 하이브·어도어 간 '뉴진스 계약해지권' 공방이나 민 대표의 '풋백옵션 행사 가격 영업이익 30배 요구' 논란 등 갈등의 쟁점은 쉬 잊혀졌다.

민 대표 기자회견이 열린 당일, 일본 'X'(옛 트위터)엔 '시xx끼'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일본어가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했다. 김성윤 동아대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민 대표 기자회견은 누가 더 진정한 피해자인지를 가리는 '불행배틀'을 통해 내 절대적 고통으로 타인의 감정을 압도해서 입을 막아버리는 방식으로 비칠 수 있다"며 "그에 대한 열광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불완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봤다.


양승준 기자
서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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