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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뻔한 산모 살려낸 의료진이 소방서 언급한 이유는

입력
2024.05.13 13:00
수정
2024.05.13 17:37
5면
0 0

[산모가 또 죽었다: 고위험 임신의 경고]
양수색전증 산모 신속 전원 390분 사투
산과·소아과·마취과·영상과 유기적 협진
돈 많이 드는 고위험산모센터 턱없이 부족
'완성형 병원' 확대로 긴급상황 대응 필요
"화재 적다고 소방서 없애지 않는 것처럼
생명 살릴 '분만 인프라'는 공공재로 봐야"

편집자주

11년 간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산모는 389명. 만혼·노산·시험관·식습관 변화로 고위험 임신 비중은 늘고 있지만, 분만 인프라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100일 동안 모성사망 유족 13명, 산과 의료진 55명의 이야기를 통해 산모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붕괴가 시작된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안전한 출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했습니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에게 그때 그 수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20년 이상 고위험 산모들 곁을 지켰지만, 생사 기로에 있던 그 산모를 살려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2019년 7월 9일 오후 2시 30분쯤 외래 진료를 보고 있던 성 교수는 대구 시내의 한 분만병원 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원장과는 별다른 인연도 없고 평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다. 원장은 전화기에 대고 다짜고짜 응급 산모를 받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분만 중 양수가 터져 산모가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만 40세였던 산모는 오후 2시 20분 호흡곤란과 혈압저하 등 전형적인 양수색전증 증세를 보였다. 산모 8,0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는 양수색전증은 양수가 산모 혈관에 들어가 생기는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벌에 쏘인 뒤 보이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비슷하다.

양수색전증은 사망률이 61~86%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산모를 포기하더라도 아기부터 살려야 한다는 내용이 산부인과 교과서에 언급될 정도다. 예측이나 예방이 불가능해 사전 대처가 어렵다는 점도 공포감을 더한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병원 수술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병원 수술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산모 회복까지 6시 30분간의 사투

성 교수는 원장에게 일단 환자를 보내라고 했다. 그는 급히 외래를 다른 교수에게 부탁하고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때가 오후 3시. 산모는 의식이 없는 채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응급실에 도착했다. 도착 후 상태를 체크해보니 최고 혈압이 30~40㎜Hg 수준으로 너무 낮았다. 아기도 아직 산모 배 안에 있었다. 성 교수는 카트에 올라타 주먹으로 질 출혈을 틀어 막으며 수술방으로 밀고 들어갔다. 마취과에 협조를 구할 여유도 없어, 일단 수술방에 들어간 뒤 마취과 선생님을 불렀다.

오후 3시 20분. 병원에 온 지 20분 만에, 양수색전증 발현 한 시간 만에 제왕절개 수술이 시작됐다. 오후 3시 30분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산모 혈압이 너무 낮았다. 여기에 혈액이 응고되지 않아 출혈은 잡히지 않고,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수술 시 자궁 동맥들을 모두 묶어 지혈했지만 봉합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오후 4시 50분 곧바로 환자를 영상의학과에 보냈다. 이때 흘린 피만 2ℓ가 넘었다.

영상 장비를 보며 침습 시술을 하는 인터벤션(영상중재치료) 의사는 색전술(혈관 차단술)을 통해 자궁 동맥 10여 군데의 출혈을 잡았다. 당시 혈압은 30/15㎜Hg로 성 교수도 이렇게 낮은 혈압은 처음 봤다고 했다. 오후 7시 온갖 혈압 상승제를 투여해 봤지만 진척이 없었다. 환자 가족 입장에선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성 교수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려울 수도 있다"고 솔직히 말하자, 산모 동생은 고함을 질렀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자신이 수술을 집도해 태어난 신생아의 손을 만지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4월 24일 자신이 수술을 집도해 태어난 신생아의 손을 만지고 있다. 대구=정다빈 기자


산과는 소아과·마취과·영상과 원팀으로 굴러간다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뒀지만, 환자 상태는 조금씩 회복됐다. 혈압이 30~40㎜Hg을 오가다 저녁 9시 10분 60/45㎜Hg까지 올라왔다. 위험한 시간을 잘 버티니 생사의 변곡점을 지나 회복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산모는 깨어났고, 오후 11시 110/70㎜Hg으로 정상화됐다. 혈압이 낮은 상태로 지속되면 신체 손상이 남기 마련이지만, 다행히 산모에게는 장애가 남지 않았다. 성 교수는 깨어난 환자에게 "산모님, 정말 요단강 건넜다 오셨다"고 말했다. 산모는 폐렴 및 간 손상으로 치료받다가 입원 12일째 건강히 퇴원했다.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산모와 간호사 등에게 받은 편지들.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성 교수에게 산모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산모와 간호사 등에게 받은 편지들.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성 교수에게 산모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대구=정다빈 기자

성 교수는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분만 인프라 구축의 지향점이 모두 담겨 있다"고 했다. 우선 신속한 전원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분만병원은 칠곡경북대병원 인근에 있어 10분 내 전원이 가능했다. ①고위험 산모는 늦어도 한 시간 내에 전원돼야 손을 쓸 수 있다. 협진 체계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평일 낮에 전원 요청이 왔기 때문에 마취과와 영상의학과 의료진을 바로 부를 수 있었지만, 한밤중이었다면 산모 생사는 장담할 수 없었다. ②산과·소아과·마취과·영상의학과의 유기적 협진이 가능한 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를 전국에 확대 설치할 필요가 있다.

공공병원, 소방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국일보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급종합병원 산과 교수 12명도 성 교수의 생각에 공감했다. '완성형 병원'이 많이 생겨야 지금처럼 고위험 산모가 증가하는 추세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경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저위험이든 고위험이든 산모가 문제가 생겼을 때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병원이 많아져야 한다"며 "우리 병원의 경우 병상 가동률이 90%에 달해 환자를 못 받을 때가 많다. 전원 오는 산모를 모두 받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오경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가 4월 4일 수술실 앞에서 손을 씻고 있다. 정다빈 기자

오경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가 4월 4일 수술실 앞에서 손을 씻고 있다. 정다빈 기자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고위험 산모를 많이 받을수록 적자가 커지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선 이 길을 택할 이유가 없다. 전국에 산재한 고위험산모치료센터 20곳은 매년 정부에서 3억 원씩을 지원받고 있지만 인건비를 대기에도 부족하다. 센터 한 곳을 운영하려면 많게는 100명의 의료인력과 다수의 장비가 필요하다. 높은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지만, 분만 수가는 턱없이 낮고 출산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결국 시장경제의 틀을 벗어나야 해결책이 보인다. 농어촌에서 1년에 겨우 화재 10번 진압했다고 소방서를 함부로 없애지 않는 것처럼, 출산 인프라도 긴급 상황에 대비한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의료도 소아과처럼 정부가 적자를 메워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에 대해선 적자 고민이 없도록 손실분을 메워주는 '사후 보상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다만 단순히 분만 수가를 올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수요가 거의 없는데, 누가 지방에서 산부인과를 하겠느냐"며 "정부가 공공병원 운영을 통해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고위험 산모 증가 추세에 맞춰 안전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정부가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산모도 살고 아기도 산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고대구로병원 분만실에서 조금준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10일 서울 고대구로병원 분만실에서 조금준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문제는 또 있다. 지방에 고위험산모센터를 만든다고 산과 의사들이 얼마나 지원하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전국 수련병원 95곳의 산과 교수 현황을 파악한 결과, 15년 뒤에는 절반 이상(53.8%)이 정년 퇴임한다. 산부인과 전문의 중 세부 전공으로 산과를 선택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20~30년 뒤에는 산과 의사가 멸종될 수도 있다.

김현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제왕절개 수술을 마치고 병원 복도를 이동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김현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제왕절개 수술을 마치고 병원 복도를 이동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산과 의사들을 계속 배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격무 해소다. 밤시간에 출산이 많고 응급 상황도 잦아, 산과 의사들에게 당직 근무가 필수적이다. 일주일에 한 차례만 당직이 돌아오도록 해도 삶의 질은 개선된다.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나를 보면 '교수님처럼 못 산다'고 말한다. 365일 병원에 얽매여 있는데 누가 산과에 지원하겠느냐"며 "고위험 산모를 돌보는 병원에 대해선, 정부에서 산과 교수가 6명이 되도록 인건비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분당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 3월 14일 분당서울대병원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김현지 분당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 3월 14일 분당서울대병원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분만을 받는 산과 전문의가 되려면 의대 입학 후 대략 14년이 걸린다. △의대 예과·본과 6년 △전공의 인턴 2년·레지던트 4년. 여기까지 마치면 산부인과 전문의로 인정받지만, 그중에서도 산과(모체태아의학)를 전문으로 하려면 △산과 전임의(펠로) 과정을 2년 더 거쳐야 한다. 통상 펠로 과정까지 마쳐야 제대로 분만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 김현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해 전국적으로 산과를 선택한 전문의가 14명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고위험 임신 최전선인 대학에 남으려고 하는 분들이 몇 명이나 될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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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
칠곡 = 송주용 기자
박준석 기자
한채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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