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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도 우습죠"... 불법 돈세탁 먹잇감 된 '테더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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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도 우습죠"... 불법 돈세탁 먹잇감 된 '테더코인'

입력
2024.05.04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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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테더코인 범죄... 교환 미끼 절도
'자금세탁' 가능성... SNS 광고도 즐비
"추적 어려운 코인, 돈세탁 통로 될라"

2일 텔레그램으로 접촉한 테더-현금 세탁 업자와의 대화 내역. 텔레그램 캡처

2일 텔레그램으로 접촉한 테더-현금 세탁 업자와의 대화 내역. 텔레그램 캡처

"테더가 좋죠."

2일 텔레그램으로 "현금 2억 원을 세탁하고 싶다"는 문의에 돌아온 답변이다. 돈세탁 업자는 "수수료 8%만 내면 안전하게 불법 자금을 테더코인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절차도 간단했다. 카페나 사무실 등에서 만나 돈만 확인되면 테더코인을 즉석에서 이체해 주는 식이다. 오랜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는 한 번도 자금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기자가 거듭 몸을 사리자, 업자는 "추적될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20억, 30억 원도 세탁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서울 강남에서 가상화폐(코인)를 미끼로 거액을 강취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모두 '테더코인'이 매개가 됐다. 달러와 1대 1로 등가 교환되는 안정성 탓에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찰은 억대 현금이 오간 만큼 사건 너머에 자금세탁 의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추적이 어렵고 온라인이 창구인 가상화폐 거래가 급증하면서 일반인도 코인을 활용한 돈세탁 범죄에 눈독을 들일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테더코인은 왜 범죄 표적 됐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3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새 강남에서 "코인을 싸게 팔겠다"고 유인한 뒤 현금을 들고 달아난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달 1, 11, 23일 그리고 3월 13, 21일 등 확인된 피해만 최소 5건이다. 피해자들은 최소 1억 원에서 많게는 5억 원 넘는 돈을 빼앗겼다. △액수가 맞는지 세는 척하다 도주하거나 △돈을 이체한 것처럼 휴대폰 화면을 조작해 보여준 뒤 달아나고 △둔기로 피해자를 폭행해 돈을 강탈하는 등 범행 수법도 다양했다.

주목할 점은 전부 테더코인이 거래 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 코인은 달러와 1대 1로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기존 화폐에 가치를 고정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가상화폐)'으로 해당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한다. 피해자들은 차익 실현을 위해 가격 급등락이 적은 테더를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꾐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대표는 "업자들은 의심하는 구매자들에겐 '사정이 있어 김치프리미엄(국내 거래 코인 시세가 해외에 비해 높은 현상)을 제외한 가격으로 판다'고 설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인 등장에 돈세탁 쉬워져"

테더코인으로 현금을 세탁해준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 홍보 문구. 텔레그램 캡처

테더코인으로 현금을 세탁해준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 홍보 문구. 텔레그램 캡처

경찰은 일단 사건 대부분에 절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피해자들의 돈세탁 의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사건 전후 맥락이 테더코인을 활용한 불법 자금 세탁 절차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빼앗긴 돈이 범죄와 관련이 있는지 추가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텔레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테더를 통한 자금세탁 업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지노 수익금 8억 원을 테더로 바꿨다" 등 고객 만족 사례도 즐비했다. 찾은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돈세탁 문의에 다수 업체들도 최근 사건과 같은 '현금-테더 교환 방식의 대면거래'를 제안했다. 사기를 의심하자 "정 불안하면 100만 원 정도 테스트 교환 후 나머지 금액을 진행해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3~10%를 요구했다.

일련의 사건이 불법 자금과 관련됐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코인을 매개로 한 돈세탁이 용이해진 건 분명하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안정성이 무기인 테더코인은 거래 과정에서 손해 볼 일이 없고 추적도 어려워 돈세탁에 자주 이용된다"면서 "SNS를 중심으로 횡행하는 자금세탁 광고를 강력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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