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코나보이 '부모됨의 뇌과학'
'부모가 된다'는 건 무엇인가. 성년이 돼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통해 부모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부모됨'의 뿌리는 임신과 출산만으로 모성 본능이 완성되고, 엄마는 타고난 듯 아이를 능숙하게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성이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자식이 없다고 불안전한 상태로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미국 과학저널리스트 첼시 코나보이가 쓴 '부모됨의 뇌과학'은 출산과 육아가 더 이상 본능도 운명도 아니게 된 시대의 부모 됨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찰스 다윈을 필두로 한 남성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모성 개념이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과학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엄마라면 누구나 천사 같은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주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충만한 삶의 의미를 느낄 것이라는 편견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신 연구들은 양육이 아이라는 강력한 자극에 의해 뇌에 관련된 신경 연결, 즉 돌봄 회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아이 가까이에서 체온을 나누고 눈을 맞추며 아이의 욕구를 돌보려고 애쓰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돌봄 회로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나 훌륭한 양육자가 될 수 있다는 책의 긍정적인 메시지에도 변하지 않는 건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는 일이 엄마를 포함해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짐이라는 사실. 타고난 능력이 아닌 까닭에 능숙해지는 데 충분한 시간과 조력자가 필요하지만 '독박 육아'의 현실은 부모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공동체에는 일과 육아를 거뜬히 해내는 슈퍼맘 환상에 더해 '맘충'으로 대표되는 부모에 대한 혐오가 팽배하다. 아이가 그렇듯, 부모 역시 도움과 성장이 필요한 존재라는 집단적인 각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부모, 완벽한 육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산후 우울증'을 포함해 수많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돌봄을 돌보는 일'은 '초저출생 대한민국'에서 희미해진 단어 '인류애'를 떠올리게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한 사람에게만 지우지 않고, 여럿이 함께 나누어 견딜 만한 고통으로 만드는 건 인류의 유대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아닌가. 부모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환상과 혐오를 조장하고, 부모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깎아내리는 형태로 시행되는 암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류애의 회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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