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광시곡' 내놓은 조성기 작가
박정희 정권 시절 요시찰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을 찾은 기록
"정우성 주연의 영화 '서울의 봄'에 젊은 친구들이 몰리는 걸 보곤 '오래전 역사라 허구처럼 느껴지면 그 드라마틱함을 즐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그런 측면이 있었고요." 역사는 잔인한 측면이 있다. 뼈아픈 기록인데 후대에겐 흥미로운 오락거리처럼 느껴진다는 면에서. "하지만 지금과 별다를 바 없던 성적, 진로 스트레스도 담았고 연애 얘기도 있으니까 젊은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해요."
30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순화동천에서 만난 조성기(73) 작가. "앞서 두 소설 '사도의 8일'과 '1980년 5월 24일'을 내곤 입원할 정도로 앓아눕는 바람에 부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이번에는 부인 몰래 썼다"며 '아버지의 광시곡'(한길사 발행)을 내밀었다.
1924년에 나서 1980년 돌아가신 아버지, 더 정확하게는 1960년 5·16 쿠데타 직후 '초등교원노조 부산지부 위원장'이란 이유로 구속된 뒤 일도 건강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채 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 사태 직후 위급해져 끝내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다.
조 작가는 이를 "내 인생의 대부분을 지배해 온 두 권위가 함께 스러진" 것이라 불렀다. 그래서 사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지만 공적으론 '박정희 시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왜 교원노조를 했을까.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때문이었다. 부정선거를 위해 이승만 정권은 선생님들을 철저하게 동원했다. 동원당했다는 죄의식, 이제 그런 식으로 동원당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노조운동으로 이어졌다. '상대 대선후보 조병옥이 죽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와는 무관하다'는 다큐 '건국 전쟁' 식의 논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얘기인지 생생한 스케치가 담겼다.
"48세까지 사시를 본 아버지...돌아가시고 알았죠"
몰락한 아버지는 술에 절어 살았고 아들의 성공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조 작가는 평준화 이전 경기고, 그리고 서울법대를 다녔다. 엘리트 코스다. 하지만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시험 점수가 나오면 아버지에게 불려 가 그야말로 쥐 잡듯이 취조를 당했다"고 했다. 어느 과목에서 무엇을 왜 틀렸는지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서울법대에 붙었을 때도 칭찬은커녕 수석합격을 못했다고 구박받았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조 작가는 방황했다. 사법시험과 판검사의 길 대신 종교와 문학에 빠졌다. 어려서 신춘문예에 붙고 이런저런 문학상도 받고 이름을 날렸지만 아버지는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됐는데 마흔여덟까지 직접 사법시험을 치르셨더라고요. 자신에 대한 울분,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것 아니었겠나 싶어요."
이 외에도 "시하 정미신춘가절에 제하여 삼가 귀하의 존체도 만안하심과 댁내금안하심을 앙하 저축하나이다"라는 거창하지만 대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을 인사로 시작하는 1967년 김형욱 당시 중정부장 명의의 편지 이야기, 영화 '서울의 봄'으로 다시 부각된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나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씨와의 인연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스무 살 때 생각한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는 또 달라요. 결국 남는 건 그리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정희 시대가 앗아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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