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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보다 '매출'이 중요해"... K팝 시장 시끄러운 이유, 전부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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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보다 '매출'이 중요해"... K팝 시장 시끄러운 이유, 전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입력
2024.04.30 04:30
수정
2024.04.30 11:44
21면
0 0

독창성 잃고 획일화된 K팝,
문화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며 '도미노 부작용'
획일화 콘텐츠 속 '그나마 진짜' 찾기 경쟁
기획사 '진정성 마케팅'으로 가수들 감정노동

2022년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에서 데뷔한 뉴진스(위)와 2024년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아일릿(아래). 어도어 및 빌리프랩 제공

2022년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에서 데뷔한 뉴진스(위)와 2024년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아일릿(아래). 어도어 및 빌리프랩 제공

①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문제 삼은 하이브 소속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베끼기) 의혹 ②걸그룹 르세라핌 라이브 실력 논란 ③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자필로 쓴 '연애 사과문' 파문.

최근 K팝 시장을 들썩이게 한 세 가지 이슈엔 공통점이 있다. '진짜 창작', '진짜 가수' 그리고 '진짜 사과' 즉 모두 '진짜임'을 확인하기 위해 불거진 갈등이거나 논란이다.

아이돌그룹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와 점점 비슷해진 것이 논란의 근원이다. 엇비슷한 군무에 익숙해진 K팝 팬들은 아이돌의 가창력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평가하기 시작했다. K팝 기획사들은 콘텐츠 차별화 대신 "우리 가수가 팬들에게 이렇게나 진심이다"라는 것을 부각하는 '진짜 마케팅'에 주력하며 아이돌이 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사과문을 쓰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티 레이블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K팝 기획사들이 매출 올리기에 급급해 콘텐츠가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되면서 그 한계가 연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을 앞세워 세계 음악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K팝 시장에서 '진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민희진(왼쪽 사진) 어도어 대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어도어·하이브 제공

민희진(왼쪽 사진) 어도어 대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어도어·하이브 제공


뉴진스와 아일릿의 안무를 비교하는 영상. 유튜브 캡처

뉴진스와 아일릿의 안무를 비교하는 영상. 유튜브 캡처


"문화 다양성? 상품의 다양화"

'킹(열)받을 만한 뉴진스와 아일릿의 안무 비교.'

요즘 유튜브엔 이런 내용의 영상들이 올라온다. 아일릿 멤버들이 노래 '마그네틱'(2024) 무대에서 왼팔을 들고 비스듬히 서 오른팔로 원을 그리며 흔드는 춤 등이 뉴진스의 '디토'(2022) 포인트 안무와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아일릿과 뉴진스는 모두 하이브 산하 레이블(음악기획사) 소속이다. 지난달 '마그네틱'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K팝 팬들은 아일릿의 같은 회사 선배 뉴진스에 대한 오마주라 여겼지만, 민희진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한 점을 강조하며 "안무, 의상 등 모든 영역에서 하이브가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카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작) 공식이 비슷해지면 독특함이 기성품이 된다"고도 했다.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아이돌그룹을 잇따라 내면 '제 살 깎아먹기' 경쟁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브는 11개의 레이블을 거느리고 있다. 빅히트뮤직, 빌리프랩, 쏘스뮤직 등 과반이 K팝 관련 레이블이다.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나눈 카톡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나눈 카톡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2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2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카피 의혹의 '집안(하이브) 싸움'이 격렬하게 일고 그 갈등이 밖으로까지 표출됐다는 건 K팝 시스템에 대한 제작자들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주식 자본에 K팝 기획사가 잠식되면서 소위 '돈' 되는 특정 음악 스타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봤다. K팝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은 "YG엔테테인먼트가 조직 분산의 의미에서 서브 레이블 전략을 취했다면, 하이브는 적극적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성했다"며 "하이브의 멀티레이블이 보여준 K팝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양성이라기보다 소비, 즉 상품의 다양성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은 비슷한 성공 방정식으로 양적 팽창만을 중시하는 K팝 산업이 한계에 부딪힌 징후라는 설명이다.

그룹 르세라핌이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그룹 르세라핌이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라이브 논란' 거세진 이유

K팝 아이돌그룹이 개성을 잃고 평준화되면서 '진짜 가수'를 향한 팬들의 갈증도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미국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선 르세라핌의 가창력 논란이 거셌던 배경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이나 스타일, 안무 등에서 특성을 점점 찾기 어려워지다 보니 K팝 팬덤이 아이돌그룹의 정체성을 가창력에서 찾는 것"이라며 "철저히 산업적 시스템에서 제작되는 K팝 아이돌그룹에 가창력으로 '진짜 가수' 임을 확인하려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이유"라고 해석했다. 기획사와 팬덤 모두 '진짜'라는 수식어를 두고 K팝 시장에서 패권 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연애 사실을 공개하며 팬들에게 쓴 사과문. 카리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연애 사실을 공개하며 팬들에게 쓴 사과문. 카리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카리나가 열애설을 인정하자 일부 팬들이 최근 서울 성동구 SM 엔터테인먼트 본사에 트럭을 보내 불만을 표시했다. 엑스(X) 캡처

카리나가 열애설을 인정하자 일부 팬들이 최근 서울 성동구 SM 엔터테인먼트 본사에 트럭을 보내 불만을 표시했다. 엑스(X) 캡처


에스파 카리나. 뉴스1

에스파 카리나. 뉴스1


배신? '진정성 마케팅'의 그늘

진정성을 부각하는 '진짜 마케팅'이 K팝 시장에서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획사들은 팬덤 플랫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이브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위버스와 SM이 가수와 팬들의 소통을 유료로 중개하는 버블 등이 대표적이다. K팝 소비문화를 다룬 책 '망설이는 사랑'을 낸 안희제 작가는 "K팝 기획사들은 작품을 통해 팬덤을 탄탄히 하기보다 회사 차원에서 플랫폼을 운영하고 굿즈(가수 관련 상품)와 자체 예능프로그램 같은 콘텐츠로 가수에 대한 팬의 마음을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콘텐츠에 대한 차별화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진짜 마케팅'은 K팝 기획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연애를 하자 일부 K팝 팬들은 "왜 배신했니?"라고 트럭 시위를 벌이며 사과를 요구했다. 에스파 멤버 카리나는 배우 이재욱과 교제를 인정한 뒤 자필로 쓴 사과문을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성인이 누군가와의 사랑을 공개 사과해야 하는 일까지 벌어진 건 K팝 아이돌이 팬덤에 속박된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K팝 기획사들이 아이돌의 진정성과 성실성을 지나치게 부각해 벌어진 부작용으로 분석된다. 강은교씨는 논문 'K팝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에서 "손글씨로 쓴 사과문으로 아이돌의 진정성을 강조하며 소비자 존중을 과잉 해석한 기획사의 '진정성 마케팅'으로 팬덤은 그 요구를 점점 당연시하고 있다"며 "그로 인해 아이돌의 감정 노동의 무게는 갈수록 무거워지는 중"이라고 꼬집었다. 진정성을 과도하게 증명해야 해 "연애하기 힘든 K팝 스타"라고 미국 CNN방송이 지목한 카리나는 지난 2일 결별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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