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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횡령 시대'를 연 바로 그 사건... 오스템 횡령 범죄의 전말

입력
2024.04.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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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처제 등 일가족 동원해 범행 저질러
"회삿돈 횡령한 건 줄 몰라" 주장했지만
'공범 몰릴 수 있어... 모른 척 해라' 메모

2022년 1월 6일 회삿돈 2,215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은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 이모(왼쪽 두 번째)씨가 검거돼 서울 강서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 6일 회삿돈 2,215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은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 이모(왼쪽 두 번째)씨가 검거돼 서울 강서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횡령 금액 1,880억 원. 자기자본 대비 91.81%. 당사는 2021년 12월 31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였습니다.'

2022년 1월 3일. 새해 벽두부터 충격적인 공시가 나왔다. 자금 담당 직원 한 사람이 회사 자본금의 90%를 빼돌렸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회사는 치과 임플란트로 세상에 잘 알려진 오스템임플란트. '단군 이래 최대 횡령'으로 꼽히는 오스템 횡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일주일 만에 이씨의 횡령 금액은 다시 정정된다. 2,215억 원. 한 업계를 대표하는 대형회사의 자본금을 넘어서는 돈이, 아무도 모르게 회사에서 몰래 빠져나갔다는 얘기였다.

회삿돈 쓰며 억만장자로 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씨에게 징역형을 내린 1·2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이씨는 2017년 11월부터 입출금 업무 등 회사 자금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2020년 11월, 회사 계좌에서 임의로 자금을 출금해 주식매매 등 개인 용도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빼돌린 건 5억 원.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했던가. 한 달 만에 50억 원, 80억 원을 쭉쭉 빼내 본인 명의 계좌 등으로 이체하며 대범한 행각을 이어갔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정도를 빼다가 나중엔 하루 간격으로 출금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빼낸 거액의 회삿돈을, 이씨는 어떻게 숨겼을까.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주식을 매수하는가 하면 금괴, 부동산, 회원권 등을 마구 사들였다. 회삿돈을 숨기는 작업엔 아내는 물론 아버지, 여동생, 처제까지 동원됐다. 이씨는 2021년 말 금괴 354㎏을 경기 파주시에 있는 아버지 집 옥상 바닥에 숨겼다. 그로부터 3일쯤 뒤엔 이 금괴를 여동생 집으로 다시 옮기는데, 이 과정에는 여동생과 아버지가 동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억만장자처럼 살았다. 처제 명의의 아파트 매매계약 대금을 대신 치렀고, 아내가 사들인 상가 매수 대금 12억 원도 내신 냈다. 이씨는 처제 명의로 리조트 회원권을 구매하면서 10년치 보증금에 달하는 34억 여 원을 일시납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아내는 이씨로부터 두 달에 걸쳐 2억 4,000만 원을 송금 받아 집 근처 은행들을 돌아다니면서 소규모로 분할 인출하기도 했다. 이 범행들은 주로 2021년 10월부터 12월 세 달 사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온가족이 횡령금 숨기는 데 동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처음엔 단독범행인 줄 알았지만 증거들은 '일가족 공동범행'을 가리켰다. 범행이 드러난 뒤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제외한 이씨의 아내와 여동생, 처제 모두 이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수많은 증거에도 정작 1심 법정에서 가족들은 "이씨가 횡령으로 빼돌린 돈인 줄 몰랐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처제는 형부가 준 현금과 부동산 매매 대금 등에 대해 "그냥 형부 여윳돈이라고 생각했다"거나 "재테크를 잘해서 우리보다 조금 더 잘 사는 줄 알았다"고 말했고, 금괴를 같이 옮긴 여동생마저 "금괴라는 사실을 전해 듣지 못했다"고 우겼다.

직접 관여한 재산 이전 규모만 최소 85억 원에 달했던 이씨의 아내 역시 "남편이 주식·코인 투자를 해서 번 돈으로 생각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주식 투자와 같이 합법적으로 번 돈이라면 그렇게 급하게 쫓기듯이 소비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추가로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나면서 이씨 일가족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됐다. 도피 중이던 이씨가 아내에게 남긴 메모였다. 여기엔 "공범 여부로 몰릴 가능성 있음. 본 사건과 관련해서 당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메모에서 이씨는 잠적 상태에서 실종선고를 받는 방안,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하는 방안을 저울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형 선고 및 실종 선고 및 해제 기간, 공소시효 만료 기간 등을 비교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본인의 단독 범행으로 꾸며 어떻게든 가족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지 계산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1심 재판부 역시 "이씨는 장기 징역형의 선고를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또는 가족들이 횡령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계속 보유할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원으로서는 어느 정도로 길게 징역을 선고해야, 이씨가 당초 계획한 '출소 후 이익 향유'를 막을 것인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횡령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긴 징역형이 선고됐다

징역 35년형 확정... 파장은 계속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뉴시스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뉴시스

대법원은 14일 이씨에게 징역 35년에 917억여 원 추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횡령·배임액이 300억 원 이상인 경우 징역 5~8년, 가중 요소가 있더라도 징역 7~11년을 최고형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보다 훨씬 더 중한 벌이 내려진 셈이다. 아내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여동생과 처제는 1심에선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처제가 형부의 범행을 알면서도 명의를 제공하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고, 여동생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질타했다.

'간 큰 직원' 한 사람의 대형사고는 오스템 회사 차원을 넘어 자본시장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오스템의 자진 상장폐지로 인해 주주들은 큰 손실을 입었고, 회사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엄태관 대표도 해임 권고를 받게 됐다. 투자 손실을 누락하고 현금자산을 부풀리는 등 회사가 분식회계를 한 사실과 함께, 엄 대표가 불법 주식투자를 한 의혹도 추가로 불거진 탓이다.

오스템 횡령이 세상에 알려진 2022년은 유독 비슷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오스템에 이어 우리은행 형제 횡령(700억 원), 강동구청 공무원 공금 빼돌리기(115억 원), 건강보험공단 팀장 횡령(46억 원) 등이 그것이다.

상장회사, 금융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가리지 않고 터진 횡령사고 탓에, 내부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으나, 이듬해 사상 최대의 횡령사건이 또 터지면서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는 단 1년 만에 오스템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에 이른다. 바로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3,089억 원의 초대형 횡령사고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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