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교지 찾은 한교총 '근대기독교문화유산 탐방'
한국전쟁 전후시기 학살과 화해와 용서의 흔적
이철 한교총 회장 "참된 종교인의 자세 배워야"
#. 1948년 10월 27일 전남 여수 애양원교회에서 치러진 두 아들의 장례식. 손양원 목사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수선하던 해방정국, 1948년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아들 둘을 좌익 학생 안재선 손에 잃었다. 안재선이 사형 당한다는 소식에 손 목사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
#. 1950년 10월 4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 임자진리교회에 들이닥친 인민군은 기독교인 48명을 죽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기 직전 저지른 만행이다. 이후 임자도에 들어온 국군은 이인재 목사에게 공산당원 처결권을 줬다. 이 목사는 아버지 이판일 장로를 비롯, 일가친척 13명을 북한군 손에 잃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으로 갚으라'는 게 성경 말씀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온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모두를 용서했다.
#. 1951년 4월 7일 전남 영광군 염산교회. 신도들 앞에 선 김익 전도사는 뜻 밖의 말을 꺼냈다. "그들이 천국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원수를 갚는 일 아니겠습니까." 김 전도사는 김방호 목사의 둘째 아들. 김 목사는 그로부터 얼마 전 인민군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숨졌다. 국군이 진주하고 뒤이어 김 전도사가 염산교회에 왔을 때 사람들은 입을 모아 '아들이 복수하러 왔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용서였다.
호남 교회에 맺힌 기독교인의 피
24일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와 함께 전남 일대 개신교 순교지를 둘러본 '근대기독교문화유산 탐방'에서 만난 사연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때까지, 이념이 날 것 그대로 맞부딪혔던 그 시절 또 하나의 화근은 개신교였다. 미국 선교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또 북한에서 내쫓겨 내려온 이들이 남한의 개신교도였다. 종교와 미국을 부정하던 북한에겐 그보다 더한 눈엣가시는 없었다.
이는 지난 17일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내놓은 발표로도 입증된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종교인 약 1,700명이 학살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해방 후 우익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대거 월남했다거나, 혹은 친미 세력이라는 이유로 더 큰 피해를 입었다 했다.
염산교회 77명, 야월교회 65명 ... 이어진 학살
전남 지역도 그랬다. 염산교회에선 신도 77명이 학살당했다. 이웃한 야월교회에서도 65명의 신도가 살해됐다. 손양원 목사 또한 한국전쟁 때 75명의 교인과 함께 여수에서 죽었다.
인민군은 신도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몽둥이나 죽창 같은 걸 쓰기도 했다. 목에다 무거운 돌을 매달아 물에 빠뜨리거나,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뻘밭에 사람을 묻어두는 방식으로 수장을 하기도 했다. 야월교회의 최종한(83) 장로는 어릴 적 무서웠던 기억이 여전하다 했다. 그는 "9세 때 마을에 온 인민유격대원들이 교인들을 끌고 가서 바닷가 모래밭 구덩이에 넣고 죽창으로 찔렀다"고 전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급반전되면서 분위기는 묘해졌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보복하는 피의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도들은 먼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밀었다. 물론 평탄하고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관련자들이 살아있던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용서와 화해를 했다 한들 묘한 앙금과 긴장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 화해 정신을 무너뜨릴 만한 보복 행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더 큰 자랑이기도 하다.
순교 너머 화해와 용서, 꼭 기억해야
지역, 이념 등 여러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 기억들은 보존될 필요가 있다는 게 한교총의 생각이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복수보다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 교회의 선택은 교회 내 갈등 뿐 아니라 해당 지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며 “그저 순교로 끝나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이정표가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철 한교총 공동대표회장 또한 "종교인은 큰 죄악이나 잘못이라 해도 그것을 단죄하기 보다는 궁극적으로는 껴안는 사람"이라며 "순교 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화해와 용서의 정신, 종교인의 바른 자세를 지금 이 시대에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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