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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최초 퀴어 감독의 메시지..."우리 모두가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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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최초 퀴어 감독의 메시지..."우리 모두가 이방인"

입력
2024.04.18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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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사전 공개
이스라엘, 러시아 국가관은 전쟁 후폭풍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사전 공개 행사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공식 개막은 20일부터다. 베니스=AP 연합뉴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사전 공개 행사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공식 개막은 20일부터다. 베니스=AP 연합뉴스

#1. 브라질 아마존에서 태어나 선주민 공동체에 사는 호세카 모카페시(53)의 그림. 온몸을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어린아이의 곁에 모기가 떼를 지어 춤을 춘다. 아이를 사로잡는 모기의 영혼에 관한 아마존 선주민의 이야기가 소재다. 호세카는 주로 민족 신화와 주술적인 노래에 대해 그린다.

#2. 검은 피부의 농민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면화를 수확하는 그림은 아프로멕시코 예술가 아이데 로드리게스 로페스(69)가 그렸다. 그는 멕시코 흑인 공동체의 역사에 분명히 존재하는 식민 지배 체제와 노예제를 그리며 인종차별 철폐에 목소리를 내왔다.

두 작가의 그림은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카스텔로 공원에서 개막하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됐다.

"대체 이런 작가들이 어디에 다 숨어 있었어?"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를 주제로 한 본전시를 찾은 관람객이라면 품을 법한 의문이다. 파키스탄의 주베이다 아그하(Zubeida Agha), 튀니지의 하템 엘 메키(Hatem El Mekki), 브라질의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Emiliano Di Cavalcanti) 등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이 전시장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브라질 선주민 호세카 모카페시의 그림. 모기의 영혼에 대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브라질 선주민 호세카 모카페시의 그림. 모기의 영혼에 대한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역사상 첫 남미 출신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베니스=AFP 연합뉴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역사상 첫 남미 출신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베니스=AFP 연합뉴스

세계 주류 미술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제3세계 작가들을 비엔날레 한복판으로 소환한 건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총감독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59). 전시는 '주류' '규범' '정상'이라 불리는 것들이 가려온 이방인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전시 주제 자체가 예술적 실천의 구호다.

페드로사 감독의 이방인은 외국인, 망명자, 난민 같은 지정학적 개념만을 포함하진 않는다. 퀴어, 아웃사이더, 선주민 등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한 모든 타자를 비중 있게 다룬다. 그는 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성소수자임을 공개 선언한 감독이다. 정복과 식민의 역사를 반복한 브라질 출신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혹은 어디에 있든 항상 이방인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우리 모두가 이방인입니다."

16일(현지시간) 이강승 작가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장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베니스=AP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이강승 작가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장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베니스=AP 연합뉴스


베니스 비엔날레 관람객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디오-비디오 아티스트 가브리엘 골리아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니스=AFP 연합뉴스

베니스 비엔날레 관람객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디오-비디오 아티스트 가브리엘 골리아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니스=AFP 연합뉴스


100여 개 초상화가 한데 모였다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는 센트럴 파빌리온에서 관람객이 다양한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는 센트럴 파빌리온에서 관람객이 다양한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17일 사전 공개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퀴어 예술가, 미술을 독학한 예술가, 토착 선주민 미술가들의 '현대 핵심' 부문과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사 핵심' 부문이다.

한국 초대 작가 이강승(46)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퀴어 작가다. 조각가 김윤신(89)과 함께 '현대 핵심' 부문에 출품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사망자를 기리는 영상과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가는 "이방인들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페드로사 감독이 정말 의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느껴보자라는 제안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역사 핵심' 부문에는 100개 이상의 인물화가 한데 모여있다. 20세기 작품이 대부분이다. 장우성(1912~2005)의 '화실'과 이쾌대(1913~1965)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이 공간에 함께 전시돼 있다. 피부색과 성별, 연령, 옷차림이 천차만별인 인물 그림의 집합은 그 자체로 관람객들에게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발신한다.


17일(현지시간) 베니스 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장우성의 1940년대 작 '화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17일(현지시간) 베니스 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장우성의 1940년대 작 '화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베니스=이혜미 기자


전쟁 여파는 '미술 축제' 비엔날레에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여파는 비엔날레까지 미쳤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 외에도 각 나라별 전시인 국가관 전시를 선보인다. 26개 국가관 중 24개관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반면, 전쟁 중인 두 나라는 사정이 달랐다. 이스라엘관은 "이스라엘 예술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정전 및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채 문을 닫아걸었다. 베니스 곳곳에는 "베니스에서의 인종학살 국가관을 반대한다"는 대량학살 반대 예술 연맹(ANGA)의 포스터가 붙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에 이어 올해에도 참가하지 않았지만, 국가관을 우호 관계인 볼리비아에 빌려줬다.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스라엘 국가관 앞을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굳게 닫힌 국가관 문에는 "이스라엘관의 작가와 큐레이터는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니스=AFP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스라엘 국가관 앞을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굳게 닫힌 국가관 문에는 "이스라엘관의 작가와 큐레이터는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 것"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니스=AFP 연합뉴스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일대에 붙은 이스라엘 전시 반대 포스터. 베니스=이혜미 기자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일대에 붙은 이스라엘 전시 반대 포스터. 베니스=이혜미 기자


베니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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