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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日蝕)을 소재로 한 명화들

입력
2024.04.18 04:30
수정
2024.04.20 09:00
25면
0 0
김승민
김승민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새미 리 '코르누코피아' 2024. 스테파니킴 갤러리 제공

새미 리 '코르누코피아' 2024. 스테파니킴 갤러리 제공

태양의 지름은 달의 약 400배이며, 지구와 태양의 거리도 지구-달 거리의 400배에 달한다. 18개월에 한 번 달이 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끼어들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발생한다. 대낮에 갑자기 어둠이 내리면서, 꽃봉오리가 닫히고, 매미도 울음을 멈추는 경이로운 자연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지구상에서 그 위치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며칠 전 이 희귀한 우주 현상을 뉴욕의 맨해튼에서 경험했다.

처음엔 흡사 태양이 한 귀퉁이만 남기고 입에 삼킨 듯한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가 한 시간 만에 최고조가 되자 온 세상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으스스한 추위와 어둠이 내렸다. 그 경이로움! 그런데, 아주 우연하게도 그날은 나의 영문 이름을 딴 '스테파니킴 갤러리'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오픈한 날이었다. 개관 작품도 새미 리 작가의 일식과 월식에 관련된 작품이었다.

태양을 신적 존재로 여겼던 과거 인류들은 개기일식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은나라 갑골 문자에도 일식에 관한 기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러 자료를 열람해보니, 과연 이런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개의 불꽃이 태양을 삼켰다. 큰 별이 나타났다."

왕권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믿었던 중국인들에게, 이러한 하늘 현상의 예측과 해석은 국가적으로 가장 중대한 업무였다. 황실의 천문학자 2명이 술에 취해 일식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죄로 처형됐다는 전설은 기원전 2159년에서 1948년 사이의 사건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일식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간주된다. 중국에선 일식을 태양을 집어삼키려는 용으로 표현했다. 그렇기에 북을 쳐서 용을 쫓아 보냈던 의식을 했으며, 인도에서는 괴물 라후가 태양을 잡아먹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렇듯 태양을 먹는(식)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라파엘 '이삭과 리브가를 감시하는 아빌말렉'

라파엘 '이삭과 리브가를 감시하는 아빌말렉'

바티칸 사도성엔 라파엘(1483~1520)과 그의 제자들이 그린 그림 '이삭과 리브가를 감시하는 아빌말렉(1518년)'이 있다. 이 그림 속 태양은 '금환일식'을 표현한 것으로, 1518년 6월 8일 금환일식이 실제로 있었다고 사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조토 '동방박사의 경배'

조토 '동방박사의 경배'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 화가였던 조토(1267~1337)는 베들레헴에서 동방박사가 경배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 속 별은 헬리행성으로 대체됐다. 이 당시 바사리가 쓴 조토의 전기에는 조토의 제자, 타데오 가디가 1330년 7월 플로렌스에서 실제로 일식을 관찰하다 부분적으로 눈이 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타데오 그림을 보면, 일식을 보듯, 한 목자는 눈을 가리고, 천사는 태양을 가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근현대의 경우, 에곤 실레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림도 개기일식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미처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들을 우리는 미술 경매 시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일식을 소재로 한 에곤 실레의 작품 'Kreuzigung mit verfinsterter Sonne'. 소더비 홈페이지

일식을 소재로 한 에곤 실레의 작품 'Kreuzigung mit verfinsterter Sonne'. 소더비 홈페이지

2022년 3월 런던 소더비 경매소에 나온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 그림에도 일식이 들어있다. "이때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성경의 한 구절(누가복음 23장 44절)을 재현하듯, 태양은 보라색으로 예수의 후광은 하얗게 표현했다. 우리말로는 '일식 속에 십자가에 못 박히심'(Kreuzigung mit verfinsterter Sonne·Crucifixion with Darkened Sun) 정도로 번역되는 제목의 이 그림은 예상가를 뛰어넘은 94만2,500파운드(18억 원)에 팔렸다.

한편 올 6월 뉴욕(크리스티 경매소)에서는 미국 천문학자의 컬렉이 경매에 나온다. 일식에 관련된 여러 일러스트부터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까지 다양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도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인데 이를 개인이 소장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예상가격도 천문학적 금액이라는 점이다.


김승민 슬리퍼스써밋 & 스테파니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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