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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암덩이에도 웃는 진정한 일류… 사진관 주인 정호영의 '유쾌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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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암덩이에도 웃는 진정한 일류… 사진관 주인 정호영의 '유쾌한 인생'

입력
2024.04.17 04:30
수정
2024.04.17 17:4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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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장암 4기 '5년 생존' 정호영씨
어려운 형편, 초6부터 알바, 늘 돈에 쫓겨
30세에 암 판정... 수술 2번에 방사선 치료
하고 싶었던 일 찾아... 스탠드업 코미디도
"유한한 삶... 인생은 월세, 하루하루 부족"

정호영씨가 9일 오후 경기 시흥에 위치한 히얼치즈 사진관의 촬영 장비 사이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정호영씨가 9일 오후 경기 시흥에 위치한 히얼치즈 사진관의 촬영 장비 사이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2019년 1월. 서른 살 제약영업사원 정호영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한 달에 살이 20㎏ 넘게 빠져 병원에 가니 '신장암 4기'라고 했다.

이 젊은 나이에 말기암?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많은 청춘에게, 의사는 "암세포가 한 쪽 신장 전체에 전이돼 제거해야 한다"며 "수술을 해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암 완치' 기준이라는 5년을 무사히 보냈고, 호영씨는 살아남았다.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을 받으며 '암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검은 머리는 흰 머리로 바뀌었고, 수족증후군 탓에 비닐봉지를 신고 신발을 신지만, 그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아닌 시한부 삶을 사는 35세 청년 정호영은,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사진관을 열었다. 8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결혼도 포기했지만, 평생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도 가봤다. 그가 2021년부터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한 투병일지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재치 있는 성찰, 동료 암환자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위로와 조언이 담겨 있다.

한국일보는 9일 경기 시흥시 호영씨의 사진관 '히얼치즈'에서 그를 만났다. 호영씨는 "다음달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면 한달 더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매달매달 지구에 세들어 사는 월세 임차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웃었다.

인생이 꽃피려던 순간, 암이 찾아왔다

신장암 4기 판정을 받기 전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정호영씨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신장암 4기 판정을 받기 전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정호영씨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좋아하는 암 부작용이 생겼어요. 바로 머리칼이 백발이 됐습니다. 암 환자가 되고 제 꿈이 할아버지가 되는 거였는데, 마치 간접적으로 미리 체험한다고 할까요? 항상 시간에 갈증이 있던 제가 시간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올해 3월 21일 투병일지 중에서)

호영씨는 암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웃긴 놈'이라 불리던 소위 '인싸'였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도 삶은 순탄치 않았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었다. 워낙 운동신경이 좋아 초등학교 시절 양궁부에서 활약했지만 부모님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만뒀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PC방, 패스트푸드점, 예식장, 공사장, 전단지, 설거지, 배달까지. '돈'이 호영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선.

그러다 공고 재학 시절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선생님 배려로 단 한 번도 '야자'를 해본 적 없지만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짜장면 한 번 먹는 게 소원이었단다. 체대 입시 준비를 시작해 한 유명 사립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한다면 하는 놈'이었다.

아르바이트는 쉴 수 없었지만, 대학 생활은 '꿈' 같았다. 학교 응원단에서 활동하며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사랑을 받았다. 카레 50인분을 끓여 한달 간 끼니를 해결해도 즐거웠다. 대학 졸업 후에는 광고회사와 문구회사를 거쳐 한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매일 야근에 하루하루 바쁘고 힘들었지만 인센티브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유쾌한 성격에 실적도 좋아 회사에서 인정까지 받게 됐다.

그렇게 화양연화가 오는 듯 싶었다.

암에 걸린 후, 나는 자유로워졌다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히얼치즈 사진관에서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 일지를 기록하며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호영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히얼치즈 사진관에서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 일지를 기록하며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호영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인생에서 여행은 제가 누릴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늘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구요. 밥값 아낄려고 도시락까지 싸갖고 다녔거든요. 우울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에서)

2018년 겨울, 호영씨는 영업차 만난 의사에게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제대로 혼이 났다. 100kg에 육박하던 거구가 갑자기 20kg 넘게 빠지면서 홀쭉해졌기 때문이었다. 군대는 헌병 군탈체포조(DP)로 다녀올 정도로 잔병치레 없이 늘 건강했던 호영씨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단다.

급하게 예약을 잡고 검사를 받아보니 신장암 4기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암덩이 크기가 30cm나 됐다. 4기 신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20% 정도다. 호영씨는 "처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현실감이 없었다"면서 "그때부터 길고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10시간에 걸친 첫 수술, 이어진 1년의 임상치료 동안 호영씨는 침대에 누워만 지냈다. 하지만 1년 만에 암은 재발했다. 호영씨는 "아산병원에서 안산 집으로 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동안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며 "그래도, 절망한 시간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일지를 쓰는 정호영씨의 암 투병 전(왼쪽)과 후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일지를 쓰는 정호영씨의 암 투병 전(왼쪽)과 후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그의 삶은 변했다. 먼저 이탈리아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여행 이후엔 "기다려주겠다"고 한 직장을 때려치고 사진 공부를 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공부해 시흥에 2020년 사진관을 차렸다. 손님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취업준비생에겐 조언을, 여권사진을 찍으러온 신부님과는 함께 기도를 했다.

가족·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투병 초기엔 친구들의 격려와 도움이 그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호영씨는 "억울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거랑 정반대로 살아보겠다고 마음 먹었었다"며 "돈에 대한 집착을 포기했더니, 돈이 더 잘 벌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미소지었다.

당연히 포기한 것도 많았다. 우선 연애와 결혼. 호영씨는 8년간 옆을 지켜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니 장기계획은 세울 수가 없다"면서 "오히려 잘 버텨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도 말기암의 고통과 약의 부작용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으로 그는 신장 한쪽을 잃고 척추뼈 3개가 부러졌다. 항암제를 네 번이나 바꿨지만 부작용은 여전해 수족증후군 때문에 손과 발이 타는 고통은 그대로다. 그래도 그는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처럼 저는 암세포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호영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사진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정호영씨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사진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 정호영씨 제공


한달씩 연장하는 삶... 제 인생은 '월세'죠

정호영씨의 친구가 최근 대만 여행에서 호영씨를 촬영한 모습. 호영씨의 모토 '월세로 사는 삶'이 적혀 있다. 정호영씨 제공

정호영씨의 친구가 최근 대만 여행에서 호영씨를 촬영한 모습. 호영씨의 모토 '월세로 사는 삶'이 적혀 있다. 정호영씨 제공


"암 환자의 미래는 계획을 하기도, 계획 없이 살기도 참 이상한 상황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난 5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이제 36번째 생일을 기다려보겠습니다."

(정호영씨 투병일기 중에서)

그래도 그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산다고 했다. 언제까지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을지 의사도, 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 호영씨는 "저에겐 '다음'이 없어서, 친구들끼리도 '다음에 가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며 "남들이 사는 80년을, 저는 응축해서 살고 싶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조카와 즐겁게 놀아주기도 한다. 최근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가고 싶어진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투병일지를 꾸준히 쓰면서 자기 경험을 다른 환자뿐 아니라 삶에 지친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강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고교 후배들을 대상으로 첫 강연을 마쳤다. 스탠드업코미디 대본도 쓰고 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호영씨는 암에 걸리고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2021년 4월 22일 블로그를 개설하며 이렇게 썼다.

"시간이 쌓여간다는 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또 두렵기도 하고요. 살아간다는 표현도 맞고, 죽어간다는 표현도 맞는 것 같습니다만 요즘은 죽어간다는 표현이 더욱 와닿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죽어갈 수 있을지 낙담이나 포기, 절망이 아닌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봅니다."

정호영씨가 투병 중 주변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받은 안부 편지들. 정호영씨 제공

정호영씨가 투병 중 주변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받은 안부 편지들. 정호영씨 제공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히얼치즈 사진관에서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 일지를 기록하며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호영씨가 본보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히얼치즈 사진관에서 '유한한 삶'이라는 블로그에 신장암 투병 일지를 기록하며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호영씨가 본보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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