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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실수로 무국적 될 뻔한 다문화 자녀… 법원 "국적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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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실수로 무국적 될 뻔한 다문화 자녀… 법원 "국적 인정해야"

입력
2024.04.09 13:37
수정
2024.04.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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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에서 혼외자로 출생해
가족관계등록 작성→ 뒤늦게 폐쇄
법무부 "국적보유자 아냐" 판정에
대법원 "당국이 신뢰보호원칙 어겨"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행정당국 착오 탓에 다문화 가정 혼외자가 내국인으로서의 신분 등록 절차를 밟았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별도 귀화 허가가 없었더다도 내국인임을 인정하는 서류의 효력이 수년간 유지된 이상, 정부로부터 국적을 인정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 등 2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적비보유판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12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와 그의 동생은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각각 1998년과 2000년 태어났다.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기 전이었지만, A씨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먼저 하면서 자녀들은 2001년 주민등록번호를 받았다.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된 2008년 1월에는 가족관계등록부에도 등재됐다.

그러나 이듬해 부부의 혼인신고를 접수한 당국은 돌연 A씨와 동생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를 폐쇄했다. 외국인 어머니와의 혼외자 출생에 해당하므로 정정 대상이라는 이유였다. 가족관계등록부 기록이 법률상 허가될 수 없거나 기재에 착오나 누락이 있으면 정정 대상이 된다. 당시 A씨 부친은 "내 아이들이 맞다"며 인지 신고를 했지만, 자녀들의 가족관계등록부는 살아나지 않았다.

다만 주민등록번호까지 말소되진 않았다. 가족관계등록부 없이 생활하던 A씨와 동생은 17살이 되던 해 정상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한국에서 계속 거주하며 대학에 들어간 A씨는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만 지급되는 국가장학금도 받았다.

이에 A씨와 동생은 2019년 법무부에 "국적보유 사실을 인정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국적법 20조는 대한민국 국적의 취득이나 보유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이를 심사 후 판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침 어머니가 2년 전 귀화를 마친 상태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 법무부는 "한국인 부와 중국인 모 사이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음에도 출생신고가 수리돼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됐지만, 이후 가족관계등록부가 폐쇄되어 국적 보유자가 아니다"라며 국적비보유 판정을 내렸다.

이어진 소송에서의 쟁점은 '주민등록증 등이 국적을 인정하는 차원의 공적 견해표명으로 볼 수 있느냐'로 좁혀졌다. 1심은 그렇다고 보고 A씨 손을 들어줬다. 2심은 그러나 행정청이 수차례 A씨 부모에게 국적취득 절차를 알렸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잘못은 원고에 있다고 보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A씨와 동생의 주민등록번호가 계속 유지된 이상 국적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취지다. 비록 부모가 국적취득 절차를 따르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잘못 때문에 자식들이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당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당국이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해 원고들이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갓 성인이 된 원고들이 간편하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까지 상실하게 됐다"면서 "이로 인해 원고들은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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