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단어 때문에 골치 아픈 이가 많겠다. 길거리에 나붙은 당선사례 현수막을 보면서. 신문·방송의 총선 결과 뉴스를 보면서. 누구는 당선인이고, 누군가는 당선자이다. “도대체 무슨 차이야, 뭐가 맞는 말이야?”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솔직히 언론의 책임이 크다. 같은 매체인데 기사마다 표기가 다른 곳이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 며칠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지도 모른다.
당선인과 당선자. 표준국어대사전은 두 단어를 같은 뜻으로 풀이한다. “선거에서 뽑힌 사람.” 그런데 왠지 당선자는 익숙한데 당선인은 거슬린다. 헌법에 명시돼 있는 당선자와 달리 당선인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7년 12월 이명박씨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다. 그해 12월 말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헌법재판소에 ‘당선인’으로 부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속 ‘당선인’을 근거로 내밀었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누군가 당선자의 ‘자(者·놈)’가 당선인의 ‘인(人)’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상위법인 헌법의 ‘당선자’를 근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당선자 대변인이 언론에 ‘당선인 표기’를 요청하면서 지금껏 입에 오르내리는 우스개가 있다. 한 기자의 딱 한마디다. “그럼 기자(記者)도 기인(記人)으로 바꿀까요.” 언론은 2008년 1월 이후 당선인이란 호칭을 쓰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당선인', 국회의원은 '당선자'로 구분해 쓰는 매체가 부지기수다. 이래저래 ‘당선인’ 세 자를 볼 때마다 말로 아부하는 이의 모습이 떠올라 속이 불편하다.
'자'와 '인'의 쓰임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당선자 합격자 당첨자 발표자 등은 선거, 시험, 행사 등에 뽑힌 인물이다. 과학자 교육자 기자 성직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준다. 배신자 범죄자 가해자는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자들이다.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현자 성자 구원자도 있다.
‘인’은 법조인 예술인 경제인 의료인 등 직업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또 한국인 충청인처럼 국적과 지역을 알리기도 하고, 자유인 문화인 교양인 등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범인, 죄인, 걸인 등 반갑지 않은 '인'도 많다.
이제 누구나 알겠다. '자'에 비하의 뜻이 없다는 것을. 인이 자보다 격이 높은 말이 아니라는 걸. 유권인이 아닌 유권자가 뽑은 사람은 당선자다. 호칭에 거품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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