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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라, 우리 똘" 이십대 아버지 부름에 여든 딸 울음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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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라, 우리 똘" 이십대 아버지 부름에 여든 딸 울음 터뜨렸다

입력
2024.04.03 15:21
수정
2024.04.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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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얼굴을
가족 등 증언 토대로 복원
애절한 만남에 4·3추념식장 눈물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4·3 희생자 추념식장 화면에 나타난 하얀 한복을 입은 20대 젊은 청년이 나타나 딸인 김옥자 할머니를 부르고 있다. 김영헌 기자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4·3 희생자 추념식장 화면에 나타난 하얀 한복을 입은 20대 젊은 청년이 나타나 딸인 김옥자 할머니를 부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이리 오라 우리 똘(딸), 얼마나 커신지(컸는지) 아버지가 한번 안아보게.”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4·3 희생자 추념식장 화면에 나타난 하얀 한복을 입은 20대 젊은 청년의 부름에 김옥자(81)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영상 속 청년은 김 할머니가 다섯 살 때인 1948년 4·3의 광풍에 휩쓸려 돌아가신 아버지 김병주(당시 29세)씨였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김 할머니는 인공지능(AI)으로 복원된 아버지와 70여 년 만에 재회했다. 이들의 만남에 행사장을 찾은 4·3유족 등 참석자들도 김 할머니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시울을 훔쳤다.


3일 제주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다섯 살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김옥자 할머니와 손녀 한은빈양이 AI로 복원된 고인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며 슬퍼하고 있다. 제주=최주연 기자

3일 제주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다섯 살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김옥자 할머니와 손녀 한은빈양이 AI로 복원된 고인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며 슬퍼하고 있다. 제주=최주연 기자

이날 추념식에서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씨와 김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양이 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고두심씨는 “옥자 할머니의 70여 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다. 4·3의 피바람은 이렇게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다섯 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놨다”며 기구했던 김 할머니의 가족사를 들춰 읽었다. 4·3 당시 소개령이 내려지자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며칠 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여물을 주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선 뒤 토벌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도 이듬해 봄에 곤을동 인근 화북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언니와 동생마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김 할머니만 외롭게 남겨졌다.

김 할머니가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족과 주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수천 장의 인물 사진을 참고해 AI 기술을 이용, 김 할머니의 아버지 생전 모습을 복원했다.

무대에 올라 할머니의 사연을 소개하던 한은빈양은 “할머니가 5년 전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터를 다시 찾아가셨다. 말 한마디 없이 한참을 둘러보고 돌아서며 소나무 앞에서 ‘저 소낭(소나무)은 그때도 딱 저만큼 커났져(컸었다)’라고 하셨다”며 “저희 할머니 시간은 여전히 다섯 살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리움에 사무친 아버지 얼굴은 그 시간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제76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봉행됐다. 김영헌 기자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제76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봉행됐다. 김영헌 기자

정부가 내놓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1947년 3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3일까지 발생한 소요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일어난 무력충돌 및 진압과정에서 최대 3만 명(정부 추산)에 이르는 제주도민들이 희생됐다. 1947년 3월 1일 28주년 3‧1절 기념식 직후 벌어진 가두시위에서 군정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숨진 사건이 도화선이 됐고, 이어진 민관 총파업과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한 군정경찰의 토벌 작전이 4·3으로 이어졌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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