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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저질인가

입력
2024.04.02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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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재명(오른쪽 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주말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오른쪽 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주말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구순인 시골 어머니는 어느덧 백발에 깃털처럼 가벼워지셨지만, 중년 시절만 해도 독특한 통찰과 서늘한 고집을 드러내시곤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선친은 인문계지만 교차지원을 해서 중하위권 의대라도 가거나, 아니면 법대에 가길 바라셨다. 6·25 전쟁 세대인 선친은 특히 “인민군이 잡아가도 의사는 안 죽인다”는 말씀에 힘을 주셨다. 판검사는 당시 시골에선 입신양명의 최고 지름길로 여겨졌다.

▦ 선친께서 일장 훈시를 하고 자리를 뜨시자 어머니가 다가오셨다. “얘,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의사 그거 맨날 환자들 속에서 피고름 짜주며 돈 벌어 마누라 좋은 일밖에 더 하겠니. 검·판사도 그렇지. 허구한 날 도둑놈, 사기꾼들 상대할 텐데 그 정신(영혼)이 온전하겠니”라고 낮게 소곤거리셨다. 의사나 검·판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저 자식이 험한 바닥 피해 안온하게 살길 바라셨던 것일 터다.

▦ 어머니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라는 덴 없고, 갈 곳만 많은’ 묘하게 고달픈 직업을 갖게 됐지만, 요즘 정치판을 보며 당시 어머니의 바람이 단순한 소시민적 자식 사랑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했다.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고사성어다. 평생 '범생'이었을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최근 상대에게 ‘쓰레기’나 ‘후진 놈’ 같은 막말을 퍼붓는 걸 보며 사람을 순식간에 전락시키는 정치판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 막말과 교언이 난무하면서 정치판이 진흙탕 개싸움판이 됐다. 좋은 정치인이 많았어도 애초부터 잡스러운 자들과 정신이 피폐해진 자들, 모리배들이 뒤엉켜 판을 흐리니 누구도 오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혐오감에 아예 정치를 외면하는 풍조까지 생겼다. 그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 외면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자에게 지배당한다”고 나섰고, 한 위원장도 “정치 후지다고 무관심하면 더 후진 놈들이 지배한다”며 저질 공방까지 벌어졌다. 누가 더 저질인가. 그걸 가리는 부담까지 유권자가 지게 됐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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