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중심으로 설계한 가격 할인 정책
전통시장 대파가 마트보다 500원 비싸
농식품부 "전통시장 지원도 늘릴 것"
1일 오후 4시쯤 찾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채소를 손질 중인 A씨에게 대파 한 단 값을 묻자 "2,500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가격이 맞는지 재차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비쌀 때는 4,000~5,000원까지 했는데 많이 내린 것"이라면서 "오죽하면 나도 요새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겠냐"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정부가 최근 도매상 납품 지원과 농산물 할인 쿠폰 지급 등으로 밥상 물가 점검에 나섰는데 그동안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던 전통시장은 '할인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대형마트를 중심에 둔 지원책은 소상공인 죽이기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한 물가 안정 대책을 늘려나가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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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푼 뭉칫돈에... 마트가 시장보다 싸다
다른 식재료도 사정은 비슷했다. 50대 주부 B씨는 당근 2개를 사려다가 2,000원이라는 가격을 듣고 포기했다. "수입산 당근을 그 돈 주고 사기는 아깝다"는 이유였다. 상인이 "수입산이어도 암시롱 않다(아무렇지도 않다)"고 설득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시장 근처에 있는 롯데마트 청량리점에 가보니 대파는 한 단에 1,995원, 국산 당근은 개당 약 350원 수준이었다. 롯데마트 자체 할인 없이 농림축산식품부의 할인 지원(30%)만 받은 가격이 이 정도다. A씨는 "우리 상인들은 대형마트와 가격을 맞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푸념했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통해 농산물 할인 지원에 450억 원을 들이고 할인율 또한 20%에서 30%로 상향했다. 납품단가 지원 확대(755억 원)와 과일 직수입(100억 원), 축산물 할인(195억 원)까지 포함하면 1,500억 원 가까이 쓰는 셈이다. 이 예산이 그동안 대형마트 등에 주로 투입된 탓에 전통시장과 마트의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대형마트에 비해 '일괄 할인' 어려운 이유
대형마트 중심으로 정책을 짤 수밖에 없었던 덴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전통시장은 개별 상인이 각자 제품을 구하고 가격을 정해 장사하는 구조라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형마트에 비교하면 '일괄 할인'을 적용하기 어렵다. ①상인마다 필요한 품목과 양이 다르고 ②'최종 가격'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할인 적용 전후 가격을 비교하고 점검하기 힘들다는 것.
주무 부처인 농식품부는 계획 수정에 나섰다. 장·차관이 지난달 말 서울 소재 전통시장에 직접 들르더니 납품 단가 지원 확대 대상에 서울시 11개 전통시장을 포함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서울시 상인연합회가 사과, 대파, 배추 3개 품목을 필요한 만큼 공동으로 구매하면, 정부가 품목별로 ㎏당 1,000~4,000원의 납품 단가를 지원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시범 운영을 마쳤다. 여기에 2일 윤석열 대통령도 "할인지원과 수입 과일 공급 대책을 중소형 마트와 전통시장까지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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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전국 전통시장에 지원 확대할 것"
대형마트가 아닌 전통시장에 정부가 '현금성 지원'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발을 뗐지만 의문 부호는 여전하다. 윤혁 서울시 상인연합회 부회장은 "정부 할인 지원금으로 저렴해진 대파나 사과 등을 사려는 고객들이 지금도 대형마트 앞에 수십 m씩 줄을 선다"면서 "전통시장이 서울에만 300곳이 넘는데 그중 11곳에 지원한다는 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산 물건 중엔 반품해야 할 정도로 품질이 안 좋은 채소가 일부 섞여 있기도 했다고도 주장했다.
한 전통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현금만 주고 말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 상인들이 좋은 품질의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돕고 전문가들의 컨설팅 같은 지원도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우선 납품단가 지원 예산(755억 원)을 활용해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전통시장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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