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간 24번, 3無 민생토론회]
부처 엇박자... 정책 일관성 떨어져
'한국형 아우토반' 등... 타당성 미비
"민간투자가 90%"... 재원 불분명
'손바닥 뒤엎듯 바뀐 정책 기조와 일단 지르고 본 개발 약속, 장밋빛 전망에 기댄 재원 마련.'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진행한 24번의 민생토론회는 이 같은 '3무(無)' 논란을 남기고 잠정 중단됐다. 세 달간 공표한 350건이 넘는 정책 중 사업 타당성, 재원 확보책이 부재한 것도 수두룩해 실효성 논란 등 후폭풍은 향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①정책 일관성이 없다
정부 정책의 핵심은 신뢰고, 신뢰를 뒷받침하는 건 일관된 정책 기조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내년 시행하기로 한 금융투자소득세를 돌연 폐지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정부는 민생토론회에서도 갈지자(之) 행보를 보였다.
국가장학금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저소득층에 국가장학금을 확대해 양질의 교육기회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 뒤인 이달 5일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국가장학금 수급대상을 150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전체 대학생(200만 명)의 75%에 장학금을 주겠다는 것으로, 당초 경제정책방향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거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이 국회 문턱을 통과(지난해 12월 21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내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기로 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1월 15일 민생토론회에서 "올해 R&D 예산을 줄여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걱정하지 말라. 내년엔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발맞춰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 구조조정으로 현장의 비효율성이 개선됐다는 보고를 대통령실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과학기술계 의견을 듣지도 않고 감액하더니 불과 수개월 만에 문제가 해결됐다며 R&D 예산 증액 논의를 하고 있다"며 "정치적 판단에 따른 번복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편성하며 4조6,000억 원(14.6%)을 삭감했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R&D 예산 감축 명분은 '나눠 먹기식 카르텔 혁파'였다.
민생토론회에서 고양·용인·수원·창원의 특례시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고양시 서울 편입을 내건 것도 혼선이 불가피하다.
②타당성이 없다
사업 타당성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일단 개발 공약을 던지고 보는 것도 문제다. 이달 14일 전남도청을 찾은 윤 대통령은 "도로와 철도,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이 핵심"이라며 전남 영암~광주를 잇는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47㎞‧2조6,000억 원) 사업을 내걸었다. 시속 140㎞ 이상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인 만큼 안전성 검증과 관계 법령 개정이 필수지만 덜컥 공표됐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제야 초(超)고속도로의 개념 정립을 위해 연구용역에 나선 상태다.
1기 광역급행철도(GTX-A‧B‧C노선) 중 B‧C노선은 제대로 착공도 못 했는데, 1기 노선 연장과 2기(D·E·F노선) 신설 계획을 발표한 것도 성급하다는 평가다. 1기 노선 경과를 살펴야 추가 노선의 사업성, 재원 조달 계획이 명확해진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업 타당성 검토가 엄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을 추진하면 국가자원 배분에 비효율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운용 효율성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③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
미비한 사업 타당성 검토는 재원 마련 부실로 이어진다. 대통령실‧정부는 전국 GTX 시대, 철도·도로 지하화 등 '교통혁신 3대 전략' 소요 재원(134조 원)의 절반 이상(75조2,000억 원)을 민간에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민간 기업이 사업성을 판단해 자발적으로 투자할 것"이란 게 대통령실 입장이나, 기업들이 실제 투자에 나설지 정해진 건 없다. 개발 사업은 타당성 평가에서 경제적 편익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재원 확보를 두고 안이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지역을 순환하는 GTX-F 노선만 해도 벌써부터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장학금 확대, 청년 주거장학금 신설 등 얼마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지 알 수 없는 정책도 다수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하면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게 된다"며 "거듭되는 정부 정책 신뢰도 추락은 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관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