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새벽 파업에 운행 전면 중단
비 맞고, 차 얻어 타고, 걸어 험한 출근
오후 3시부터 정상 운영, 시민들 "다행"
“오 472번 2분! 버스 다시 하나 봐, 여보!”
28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강남구의 한 버스정류장. 지모(36)씨는 인근에 있는 승객의 탄성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전에 남편이 출근하며 승용차로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학원에 데려다줬는데,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걸어올 아이가 걱정되던 차였다. 지씨는 “택시를 언제까지 이용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행히 빠른 시간에 버스 운행이 재개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노사 간 임금협상이 틀어지면서 12년 만에 멈춰 선 서울 시내버스들이 11시간 만에 다시 움직였다. 비교적 빠른 협상 타결 덕에 버스 공백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만 예고 없는 새벽 파업으로 졸지에 ‘자고 일어났더니’ 버스 이용을 거부당한 시민들의 아침 출근길은 대혼란을 겪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조는 전날 오후부터 사측인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임금인상률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이날 오전 4시 첫차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 시내버스 7,382대 중 97.6%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중단했다.
사실상 버스 교통체계가 마비되면서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이나 마을버스 등 대체 교통편에 몰렸다.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서울지하철 2호선은 이미 만석이 아닌 객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1호선 서울역에서도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는 승객과 이를 만류하는 안내 요원 간 실랑이가 속출했다. 영등포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20분 정도 걸어가야 해 출근시간을 앞당겼다”면서 ”30분 일찍 나왔는데도 평소보다 사람이 두 배는 많은 것 같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탑승객들의 출근길 풍경도 달라졌다. 대개 휴대폰으로 유튜브나 뉴스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던 평소와는 다르게 실시간 교통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주시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직장인 상당수는 버스 통근을 대신할 '우회로'를 찾느라 진을 빼기도 했다. 오전 7시 30분 성수역에서 만난 김상윤(48)씨는 ”버스로 40분이면 가던 거리를 지하철로 두 번을 환승해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각 자치구가 긴급 셔틀버스 노선을 편성했지만, 이용객이 워낙 많아 이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송파구에서 출근하는 유지은(28)씨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기다렸는데 20분째 만원 버스만 줄줄이 들어와 포기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야 했고, 결국 지각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출근 대란이 끝난 후에도 파업 여파는 남았다. 대학생 유정혜(25)씨는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는데 인파가 몰려 지각을 면하기 위해 강남역에서 내려 부모님 차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29)씨는 “지옥 같은 출근길을 생각하니 귀갓길은 더 힘들 것 같아 친구들과 오랜만에 잡은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고 아쉬워했다.
강씨의 우려와 달리 오후 3시쯤 노사가 임금협상에 전격 합의하고 버스 운행이 재개되면서 퇴근길 대란은 없던 일이 됐다. 오전에 텅 비어 있던 중구의 한 정류장에 오후 4시쯤 다시 가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10여 명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시민들은 유예기간도 주지 않은 파업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나마 이른 정상화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직장인 이소희(31)씨는 “저녁에 은평구에 있는 본가에 가려 했는데, 지하철에서 내린 뒤 꽤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해 걱정이 컸었다”면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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