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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의대생 실습 시신, 정부는 '돌려쓰기'로 해결하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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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의대생 실습 시신, 정부는 '돌려쓰기'로 해결하겠다는데...

입력
2024.03.29 04:30
수정
2024.03.29 07:08
10면
0 0

정부 "시신 부족, 지역별 양극화 원인"
카데바 부족한 곳에 재분배 통해 해결
의대 "재분배로 불충분... 교육 불가능"
법률 개정, 윤리적 문제 등 난관 산적

11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경남 양산시 부산대 양산캠퍼스 의대 해부학실습실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11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경남 양산시 부산대 양산캠퍼스 의대 해부학실습실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정부가 의대 증원분 2,000명의 대학별 배정을 끝냈지만, 의대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들은 특히 부실 교육을 우려하는 근거로 해부 실습용 시신, 이른바 '카데바(cadaver)'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이 실습할 시신이 없어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축한다. "시신은 충분하나 지역별로 편중된 양극화"가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시신을 적절히 분배하면 교육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증 방법, 법령 관계 등을 따져 보면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증원된 지방의대들, 지금도 시신 부족

시신 기증 절차는 꽤 까다롭다. 먼저 사망 전 본인의 유언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유족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후 의대가 설치된 대학이나 부설 병원에 기증을 신청할 때도 유족의 허락의 필요하다. 인수 뒤에는 부패 방지 처리를 한 상태로 시신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실습이 끝나면 카데바를 화장 처리해 유족에게 전달하거나 자체 추모공간에 안치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카데바와 관련한 정부 차원의 공식 통계는 없다. 대학병원이 자체 관리할 뿐, 시신 기증을 별도로 기록하거나 관리기관에 보고하는 근거 법령이 없는 탓이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작성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기증 실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보고서는 지방과 수도권 대학병원의 카데바 수급 차이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의대(10곳)의 최근 5년간 평균 시신 수급 수는 54.76구인 반면, 지방(27곳)은 12.5구로 나타났다. 평균 수급이 145구인 상위 3개 대학(가톨릭대 경희대 고려대)과 5구에 불과한 하위 3곳(관동대 을지대 동국대)을 비교하면 격차가 29배나 난다.

또 양극화는 둘째 치고 대부분 대학이 현재 활용하는 시신 수보다 더 많은 희망수요를 보였다. 설문조사에서도 의대 관계자 50명 중 21명(42%)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시신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공급이 20% 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가령 이번에 의대 정원이 44명 늘어난 영남대는 기존 80명 가까운 의대생들이 한 학기에 카데바 10구로 실습 교육을 받는다. 8명이 한 학기 내내 일주일에 2, 3번씩 시신 한 구에 달라붙어 신체 부위별 모든 해부 실습을 마쳐야 하는 셈이다. 영남대 의대에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A교수는 "시신도 부족하지만 해부 실습을 교수 1명과 연구원 1명이 도맡고 있다"면서 "매 수업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숨 쉬었다.

시신이 재분배 대상? 걸림돌 수두룩

최근 5년간 전국 의대별 평균 카데바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5년간 전국 의대별 평균 카데바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부는 전체 시신 공급 규모는 충분하며, 법을 바꿔 카데바가 부족한 대학에 재분배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21일 브리핑에서 "정부가 법을 개정하고, 기증 단계에서 카데바의 재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남는 시신을 다른 곳에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보고서는 시신 기증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부가 지역거점의 시신운영기관을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이 의대와 종합병원, 두 기관만 연구 목적의 시신 수집·보존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더 많은 시신을 원하는데, 정부기관에도 시신 관리 권한을 줄 경우 그간 비교적 수급 상황이 나았던 의대들마저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더 큰 걸림돌은 정부가 시신을 멋대로 배분하는 것이 맞냐는, 윤리적 논란이다. 무엇보다 시신의 인위적 이동은 특정 병원에 기증을 희망했던 기증자의 뜻에 반하고 기증 문화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해부학을 담당하는 B교수는 "나중에 기증자의 유언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시신 실습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으면 유족들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느냐"며 "한국의 장례 정서를 고려했을 때 법 개정 같은 기술적 방식으로 정리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데바 품귀 현상이 가중될 게 뻔해지자 일부 의대에선 가상현실(VR) 기술을 적용한 해부학 수업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R 해부학 플랫폼을 개발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의대 증원 이후 대학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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