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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킹산직' 열풍, 울산 디스토피아 예고편일 수도 있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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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킹산직' 열풍, 울산 디스토피아 예고편일 수도 있죠" [인터뷰]

입력
2024.03.28 07: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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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낸 양승훈 경남대 교수
현대차 '킹산직' 열풍 뒤에 놓인 제조업 위기
고임금·생산성 선순환시킬 하이로드 전략 고민을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쓴 양승훈 경남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하이로드 전략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쓴 양승훈 경남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하이로드 전략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선진국이 되면 당연히 제조업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해요. 그런데 지금 미국은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죠. '한평생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기만 하면 나도 중산층처럼 살 수 있다'고 믿는 평범한 생산직 노동자 중산층이 없어지니까 나라가 엉망이 됐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런 시행착오를 피하려면 한국도 제조업의 역량 유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최근 펴낸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열변을 토했다. 이 책은 2019년 한국일보가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경남 거제의 조선업을 중점적으로 살폈다면, 이번 책은 조선업에 더해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까지 한데 어우러진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 문제를 다룬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과 재벌그룹 현대의 중화학공업 집중 투자로 울산은 50여 년 넘게 한국 제조업의 심장이었다. 양 교수는 그런 울산을 "세계적으로 비교해 봐도 이 정도 설비, 인력을 집중적으로 갖춘 곳은 중국 선전 정도밖에 없을 정도"라 평가했다. 최근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톱3를 넘보기 시작했고, 한 때 부진했던 조선업은 다시 호황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울산이 디스토피아를 걱정해야 할까.

현대차 '킹산직'? ...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

양 교수는 울산의 인구 감소를 눈여겨보라 했다. 2015년 117만 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더니 매년 1만 명 정도 빠져나가기 시작해 올해 11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화제가 된 현대차 울산공장의 '킹산직(킹+생산직)'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연봉 1억 원에 60세 정년 보장된다고 난리법석이었지만 정작 양 교수는 "지난해와 올해 400명을 뽑는데 최근 몇 년 간 2,000~3,000명씩 정년 퇴직했다"며 "400명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 지적했다.

'대한민국 산업수도'를 자부하는 울산 국가공단의 야경. 울산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다. 울산시 제공

'대한민국 산업수도'를 자부하는 울산 국가공단의 야경. 울산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다. 울산시 제공

'킹산직' 열풍은 단단한 생산직 중산층 자체가 줄어든다는, 울산 전체가 '느린 질식'에 돌입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최고의 산업도시가 이렇다면 경북 포항, 경남 창원, 거제, 전남 여수 등 다른 산업도시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라 봐야 한다.

제조업이 쪼그라드는 건 일종의 선진국으로서의 훈장(?) 같은 게 아니었던가. 양 교수는 "한국이 5대 제조업 강국인데 그걸 왜 자발적으로 포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중간재를 만드는 강소기업들이 제일 많은 곳은 제조업 역량을 보존하려 애쓴 독일과 일본이다. 제조업 역량이 보존됐다는 의미는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기획과 생산이 분리되면서도 아예 떨어져 나가지 않아 '고생산성-고소득'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고생산성-고소득 선순환하는 하이로드 만들자

양 교수는 경기 화성의 현대차 남양연구소, 경기 판교의 HD현대중공업그룹 글로벌연구개발센터를 예로 들었다. 기획 부분을 이렇게 뚝 떼내면 울산의 생산공장들은 하청기지가 될 뿐이다. 그 이전 울산에서 작동했던 기획과 생산이 협업하는 고생산성-고소득 순환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작한 광주글로벌모터스, 흔히 말하는 '광주모델'에 대해 비판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일자리가 급하다는 이유로 '저임금-낮은 생산성' 형태를 택한 것이라 공장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아요. 이미 근속연수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2021년 9월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업단지 내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에서 '광주형 일자리' 첫 번째 완성차인 캐스퍼 1호 생산차가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9월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업단지 내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에서 '광주형 일자리' 첫 번째 완성차인 캐스퍼 1호 생산차가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어렵더라도 고생산성-고소득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하이로드(high road)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기획, 생산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역 내 대학, 기업, 지방자치단체 간 정밀한 역할 분담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동안 김포를 서울에 붙이느니 마느니 말이 많았던 '메가시티 전략'이란 원래 이런 차원에서 검토됐어야 할 주제라는 것이다.

또 하나 '산업가부장제 타파'도 의식해야 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공장에만 가도 여성 노동자 비율이 30% 수준인데 한국 공장엔 여성이 전멸 수준에 가깝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는 여성은 결국 울산을 떠난다.

한국은 개천의 용이 되지 않아도 살만한 곳인가

괜찮은 일자리 문제는 산업경쟁력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양 교수가 던지는 궁극적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건강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어릴 적부터 죽어라 공부 경쟁해서 고시 패스하고 의대에 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저자인 양승훈 경남대 교수. '괜찮은 생산직'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저자인 양승훈 경남대 교수. '괜찮은 생산직'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열심히 일해도 땀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이 사라졌을 그때, 사람들은 코인이나 주식을 해서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건지도 모릅니다." 최근 몇년 간의 '영끌' 투자 열풍은 우리가 이미 그 길에서 벗어났다는 경고음이었을 지 모른다. 미국에서 보듯 극우 포퓰리즘 또한 거기서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조태성 선임기자
서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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