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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부르다 목이 멘다"... 장기기증 유가족, 수혜자와 합창하는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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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부르다 목이 멘다"... 장기기증 유가족, 수혜자와 합창하는 사연은

입력
2024.03.2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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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리' 합창단 김태현·송종빈씨
최연소 5세 단원부터 3대 가족도 참여
2015년부터 정기 공연·병원 초청 공연
유가족 "장기기증은 생명 나누는 축복"

장기기증 유가족 합창단 '생명의 소리'에서 활동하는 송종빈(왼쪽), 김태현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사무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장기기증 유가족 합창단 '생명의 소리'에서 활동하는 송종빈(왼쪽), 김태현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사무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너의 사랑이 나를 일으킨다. 보고파 널 부르다 목이 멘다

장기기증 유가족이 작사한 노래 '꿈에' 중

#서울에 거주하는 김태현(65)씨는 2011년 늦둥이 아들 김기석(당시 16세)군을 떠나보냈다. 건강하던 아들은 학원에 가다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했고 병원에 간 지 이틀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막연히 '기석이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오래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장기기증을 떠올렸다"고 했다. 정 많던 어린 아들은 6명에게 새 생명을 나누고 하늘의 별이 됐다.

#송종빈(69)씨는 2013년 교통사고로 큰딸 송아신(당시 34세)씨를 잃었다. 딸은 사고로 뇌사에 빠졌고, 송씨는 생전 딸의 의사를 존중해 장기기증을 하기로 했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의 등록금을 내주고 유기견 보호단체를 후원하던 딸은 생명까지 나눴다. 딸의 신장은 10년간 투석해온 23세 대학생에게 기증됐다.

지난해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483명. 그에 비해 이식 대기자는 5만1,857명으로 100배가 넘는다. 매일 8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숨진다. 장기기증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자식의 생명을 나눈 두 아버지가 합창단을 꾸렸다. 김태현·송종빈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이사를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이들이 8년째 운영 중인 합창단 '생명의 소리'는 장기기증 유가족과 이식 수혜자 등으로 구성됐다.

5세 손주부터 80세 할머니도 합창

생명의 소리 합창단이 지난해 11월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생명의 소리 합창단이 지난해 11월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합창단은 2015년 시작됐다. 당시 '세계 장기기증 및 이식의 날'을 맞아 일회성 행사로 유가족과 수혜자들이 합창을 했다. 당시 합창에 참여한 송 이사는 "처음 무대에 서고 난 뒤 가슴속 답답했던 응어리들이 풀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사비 2,000만 원을 들여 합창단 창단에 앞장섰다. 합창단을 시작으로 2018년엔 재단법인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를 설립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 현재 합창단에는 장기기증 유가족(33명), 이식 수혜자(22명),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14명) 등 69명이 활동한다. 6년 전 합창단에 합류한 김 이사는 "처음에 합창 공연을 봤는데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합창을 하면서 제가 또 다른 분들을 위로할 수 있어 보람이 느껴졌다"고 했다.

단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무대에 오른 최연소 단원은 5세, 최연장자는 80세다. 할머니와 사위, 외손자 등 3대(三代)가 함께 하는 유가족도 있다. 송 이사의 손녀(10)와 장기기증을 서약한 고등학생도 최근 합류했다.

"가사가 내 얘기 같아… 연습하다 울컥"

생명의 소리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송종빈(왼쪽), 김태현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사무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생명의 소리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송종빈(왼쪽), 김태현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사무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단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음악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악보 보는 법을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송 이사는 "학원 가서 높은음자리표, 도돌이표 같은 음악 기호부터 배웠다"며 멋쩍게 웃었다. 지휘를 맡은 이가 음역대별로 한 소절씩 불러주는 눈높이 교육도 한다. 2021년 장기기증으로 5명에게 생명을 선물한 이학준(당시 17세)군의 어머니는 주제곡인 '꿈에' 가사를 직접 써서 헌정했다.

열정은 전문가 못지않다. 매년 상반기에는 월 2회, 하반기에는 매주 모여 3시간씩 연습에 몰두한다. 연습을 위해 대구, 광양,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다. 연습하다가 감정이 북받치기도 한다. 송 이사는 "가사가 꼭 내 마음 같아서 노래를 못 부르고 울기만 하는 이들도 있다"며 "그러면 단원들이 함께 울면서 노래한다"고 전했다.

생명의 소리 합창단이 지난해 11월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생명의 소리 합창단이 지난해 11월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합창이 주는 울림은 크다. 합창단은 2015년 창단 이후 매년 정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기 공연 때는 관객 300명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김 이사는 "해가 갈수록 많은 이의 응원과 지지가 느껴진다"며 "공연 분위기가 무겁기만 할 것 같지만 율동을 동반한 경쾌한 리듬의 노래도 있어 관객 호응이 높다"고 했다.

매달 각 지역 대학병원에서 초청 공연도 한다. 공연을 통해 이식 대기 환자들에겐 '나도 이식받으면 저렇게 노래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유가족에게는 '이식을 받은 이들이 건강하게 지내는구나'라는 위안을 주고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생명 나눔은 '축복'… "삶이 변화"

장기기증 유가족인 송종빈·김태현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장기기증 표시가 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기 기자

장기기증 유가족인 송종빈·김태현 한국기증자유가족지원본부 이사가 20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장기기증 표시가 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기 기자

합창은 메아리로 돌아온다. 김 이사는 "수혜자들이 건강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우리 기석이도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지내겠지' 하는 위안이 든다"며 "기석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노래하며 슬픔 속에서 작은 행복을 처음 느끼게 됐다"고 했다. 송 이사도 "합창단은 가족과도 같다"며 "노래할 때마다 딸과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장기기증을 조건 없는 나눔이라고 강조했다. 송 이사는 "세상에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겠느냐"며 "무언가 조건 없이 남에게 준다는 건 가장 큰 기쁨"이라고 했다. 김 이사도 "장기기증을 결심한 이들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라며 "생명을 나누면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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