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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중국 쓰레기"... 올레길 바닷가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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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중국 쓰레기"... 올레길 바닷가 현재 상황

입력
2024.03.3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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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제주, 쓰레기 해안]
수거한 해양폐기물 80% 급증
정부, 모니터링 예산 전액 삭감
해양폐기물 처리 시설 확충
해양 투기 막을 대책 필요

15일 제주시 김녕해수욕장 인근 덩개해안에서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이 폐그물 등 떠밀려 온 해안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변태섭 기자

15일 제주시 김녕해수욕장 인근 덩개해안에서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이 폐그물 등 떠밀려 온 해안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변태섭 기자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청정 제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15일 제주시에 위치한 김녕해수욕장 인근 덩개해안.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올레길 바로 옆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형광색 부표, 찢어진 그물과 잘린 밧줄, 페트병 등이 검정색 암반으로 이뤄진 해변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앞 이른 봄볕을 받아 반짝이는 투명한 바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주기적으로 이곳에 들러 해안쓰레기 발생량을 조사한다는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이 말을 이었다. “폐그물은 돌 틈 사이사이에 껴 있어 치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냥 방치해 두는 거죠. 바다환경지킴이가 한 번 치웠으니까 지금은 나은 편인데, 겨울엔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입니다.” 겨울이면 북서풍을 타고 바다에 떠돌던 쓰레기가 제주 해안으로 밀려들어 제주 북부 해안은 그야말로 ‘쓰레기 무덤’이 된다는 것이다. 바다환경지킴이는 2017년부터 제주에서 운영(3~10월)하는 해양 환경미화원이다.

해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엔 바다환경지킴이가 치운 각종 쓰레기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양식장에서 쓰는 스티로폼과 대나무 등 종류도 다양했다. 전남‧경남 지역 양식장에서 나온 쓰레기가 떠밀려 온 것이다.

한자가 적힌 페트병과 부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김 국장은 “빨간색‧파란색 플라스틱 부표는 모두 중국산”이라며 “중국 연안에서 발생했거나 제주 인근 바다에서 수십 일 조업하고 돌아가는 중국 어선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라고 말했다. 그는 “마약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하얀색 액체가 담긴 작은 플라스틱병과 주사기까지 본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중국 선원들이 마약을 투여하다가 해양경찰에 여러 번 적발된 바 있다.

15일 제주시 김녕해수욕장 인근 덩개해안 주변에 바다환경지킴이가 치운 해안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다. 빨간색·파란색 부표는 모두 중국산이다. 제주=변태섭 기자

15일 제주시 김녕해수욕장 인근 덩개해안 주변에 바다환경지킴이가 치운 해안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다. 빨간색·파란색 부표는 모두 중국산이다. 제주=변태섭 기자

이날 찾은 제주항에서도 방파제 등 구조물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유세종 해앙환경공단 제주지사장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고 했다. “깨끗한 제주를 기대하고 온 관광객이 유람선을 타고 남는 첫인상이 방파제 곳곳에 있는 쓰레기이다 보니 민원도 많이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청정 제주란 말도 옛말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밀려드는 쓰레기로 제주가 몸살을 앓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주연구원의 ‘제주 해양폐기물 발생 현황 및 관리 방안’ 보고서를 보면, 제주에서 수거한 해양폐기물은 2021년 처음으로 2만 톤을 돌파(2만2,082톤)했다. 2019년(1만2,308톤)과 비교하면 2년 만에 80% 가까이 뛰었다. 쓰레기의 공습은 제주 해안을 따라 용천수도 오염시키고 있다.

그러나 중앙‧지방정부 대응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제주도청에서 해안쓰레기를 담당하는 직원은 4명에 그친다. 김 국장은 “해양 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해양산업과 안에 팀으로 꾸려져 있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힘든 구조”라고 꼬집었다. 같은 관광 자원이지만, 세계자연유산 관리에 수십 명이 배정된 것과 크게 차이 난다.

중앙정부는 16년간 진행해 온 전국 해안의 쓰레기 모니터링 사업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세수 펑크(56조 원)를 낸 기획재정부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연간 예산이 4억 원에 불과한 이 사업마저 폐지한 것이다. 기존엔 덩개해안 등 제주 3개 지역을 포함해 전국 60개 해안을 대상으로 매년 쓰레기 발생 현황을 조사해왔다.

해양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기구(NGO) 오션의 이종수 연구원은 “해양쓰레기 발생 통계는 관련 정책을 세우는 데 필수적인 기초 토대”라며 “날로 심각해지는 해양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모니터링 사업이 다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효율적인 해양쓰레기 처리 방안 마련, 어민의 불법 투기를 막을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좌민석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양폐기물 처리시설을 만들어 추가 비용을 줄이고, 어선 출항 시 배에 선적한 식음료를 사전 신고하도록 해 페트병‧캔 등 각종 쓰레기의 해양 투기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엔 염분이 많은 해양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이 없어 육지로 반출해 처리하고 있다.

제주=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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