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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오빠 전에 절 오빠가 있었다

입력
2024.03.1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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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불교에는 붓다와 관련된 4대 명절이 있다. 첫째 붓다의 탄신일인 음력 4월 8일 즉 '부처님오신날', 둘째 돌아가신 날인 음력 2월 15일의 '열반재일', 셋째 인간 싯다르타가 수행 끝에 붓다로 거듭나는 음력 12월 8일의 '성도재일', 넷째 싯다르타가 왕자라는 왕궁의 화려함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인 구도자의 첫발을 내딛는 음력 2월 8일 즉 '출가재일'이다.

재일이란, 몸과 마음가짐을 재계하여 기리는 날이라는 뜻이다. 현충일이나 개천절에 심신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4대 명절을 자세히 보면, 음력 2월 8일 출가재일과 음력 2월 15일의 열반재일이 붙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를 현대 한국불교에서는 '출가·열반재일 주간'이라 하여, '경건+수행 주간'으로 삼고 있다.

집중 수행 기간의 설정은 멀리 통일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 권5 '김현감호'에는 2월 8일부터 15일에 경주의 흥륜사에서 탑을 돌며 기원하는 탑돌이를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복을 쌓고 모으는 일이라고 해서 '복회(福會)'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때 남녀가 눈이 자주 맞았다는 것이다. 밤이 깊도록 김현이 탑돌이를 하는데, 한 여인이 염불하며 따라 돌다가 그만 사고(?)가 나고 만다. 급기야 김현은 여인을 따라 그 집으로까지 찾아간다. 그야말로 놀라운 속도의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의 결말은 여성이 김현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 내용으로 끝난다. 또 김현 역시 섧게 간 여인을 위해 호원사라는 절을 창건해 명복을 빌어준다.

짧지만 슬픈 러브스토리다. 그러나 동시에 경건한 집중 수행 기간에 탑돌이를 하다가 눈이 맞고 여성의 집까지 따라간 놀라운 사건이다. 복을 쌓는 것도 좋지만, 청춘의 열정도 주체하기 어려운 우리네의 모순적 인생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재밌다.

신라는 조선과 달리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였다. 처용이 밤늦도록 바람을 피우고 돌아오니, 부인 역시 한창 맞바람 중이었다는 처용설화는 이를 잘 나타내 준다. '김현감호'는 신라의 사찰이 고답적이며 메마른 수행자만의 공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불교는 인간 행복을 정조준하는 종교다. 이런 점에서 사회 요구에 맞추는 동시에 이를 승화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이상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김현이야말로 사랑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한 신라의 절 오빠는 아니었을까!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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