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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입시 올인, 학부모 앞에 놓인 '킬러문항'

입력
2024.03.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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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6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6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중·고 사교육비 지출이 지난해 27조1,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액으로 나타났다. 2021년 23조4,000억 원, 2022년 26조 원에 이어 3년 내리 최대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지난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국회에 사교육비를 재작년 대비 6.9% 줄일 거라 했으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지난해 학생 수는 재작년 대비 7만 명(1.3%) 줄었으나 사교육비는 1조2,000억 원 늘었고, 증가율(4.5%)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3.6%)을 웃돌았다.

특히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큰 서울에선 초중고 전 학년의 평균 사교육비 총지출이 1억 원을 돌파했다. 이달 14일 통계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초등학생 62만1,000원, 중학생 76만 원, 고교생 98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초중고 12년 평균 사교육비를 집계하면 1억764만 원이다.

서울 주요 학원가에서 교과 과목당 월 사교육비는 30만~50만 원대로 알려져 있다. 학생 1인당 '국영수과' 서너 과목을 수강하며 월 120만~200만 원을 지출하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중고교생 자녀가 2명 이상이면 월 300만 원 이상 지출되기도 한다. 고2, 고3의 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100만 원이 넘었다. 예비수험생과 수험생의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는 입시 기조의 급격한 변화가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수능 모의평가 뒤 '킬러(초고난도)문항' 배제 방침을 발표했다. 문·이과 통합 수능 3년 차에도 과목 간 유불리 문제 등으로 겪는 혼란이 여전한 탓에 학원을 등록한 수험생도 많았다는 진단이 더해졌다. 입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사교육을 부채질했다는 얘기다.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 노후 대비에 미흡한 '에듀 푸어' 계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처분 소득 기준 노인 빈곤율 1위(2020년 기준 40.4%) 오명과도 무관치 않다. 게다가 연 수천만 원 드는 유아 영어 학원비와 'N수생' 학원비도 더하면 가계 부담은 더욱 크다.

교육부는 내년에는 반드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2학기 늘봄학교 전면 시행과 EBS 고교 강의 확대 등을 사교육비 경감 근거로 들었으나, 지난해 킬러문항 논란이 미친 불수능 여파와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등이 맞물려 사교육 시장은 일찌감치 달아올랐다. 킬러문항 논란으로 세무조사를 받은 대치동 입시학원은 사태 이후 문전성시다. 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교사는 "입시 명문으로 부각돼 서울 전 지역의 학생이 거기 들어가고 싶어 했고 실제 그 학원 '윈터스쿨'에 많이 갔다"고 했다. 몇몇 입시업체는 지역 수요에 부응해 2, 3년 전부터 대구, 광주, 울산 등 지역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도 한다.

수업과 입시 준비에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신뢰받는 교육 환경이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학교에선 선행학습도 못 하지만 학원은 선행학습 유발 광고만 안 하면 된다. "우리의 역할은 돌봄(교사)"이라는 교사의 자조도 들린다. 획기적 공교육 강화책을 비롯한 교육 개혁이 없다면 학부모의 노후 대비도 결국 킬러문항이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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